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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

13. 로마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죽음:유월절과 속죄 / III. 혁명적 구출 로마서 3장 21-26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이 유월절과 출애굽 이.. 더보기
10. 우리 몸의 구속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들어기는 말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형태의 육체적 존재, 즉 현재 우리의 육체적 삶의 완성과 구속을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일종의 ‘연옥’이나 ‘계속되는 여정’이라는 중간 단계가 있건 없건)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거나 ‘지옥으로 간다’는 단일 단계의 사후 운명을 말하는 전통적인 그림은 기독교적 희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축소시킨다 ‘천국’에 대해 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부활의 언어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는 부활에 대해 성경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며 천국에 대한 우리의 언어를 그 내용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피주의나 정적주의적 경건의 기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그러한 경건은 오히려 ‘천국’에 대한, 전통주.. 더보기
9.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들어가는 말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바로잡으실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이 정말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성경에서는 특히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좋은 일이며 축하하고 기다리고 갈망할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심판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에 차서 외치게 하고, 들판의 나무들로 하여금 손뼉을 치게 하는 일이다. 체계적인 불의, 억압, 폭력, 오만 그리고 압제의 세계에서는, 악한 자가 확실하게 자기 분수를 알게 되고, 가난하고 약한 자가 자신들의 합당한 몫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반항하는 세계, 착취와 사악함이 가득한 세계 앞에서 선하신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 되실 수밖에 없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그들의 신앙이, 그분이 최후의 심판관으로.. 더보기
8. 그분이 나타나실 때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들어가는 말 우주적 구속에 대한 큰 그림을 대략적으로 제시했다. 하나님은 이 세계 전체를 구속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며 옛 세상의 부패와 타락의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이다. 마지막 구속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에너지의 폭발로 하늘과 땅이 드디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부활절은 바로 그 원형이자 근원이다. 그 큰 그림을 앞 장에서 살펴본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와 합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오겠는가? 당연히 현재 예수님의 부재에 반대되는 예수님의 직접적 현존이 될 것이다. 현재에 우리가 아는 현존-말씀과 성례전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 기도를 통해서, 가난한 자들의 얼굴 안에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은 물론 그 미래의 현존과 연관되어 있지만 그 둘을 .. 더보기
7. 예수님, 천국, 새 창조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승천 신약성경을 보면 나사렛 예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그의 승천을 믿는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수님은 그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 승천을 부활에 흡수시키거나 부활을 승천에 흡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활과 승천은 (물론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대교회의 사상 안에서 서로 매우 다른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성경적 우주론에서 하늘과 땅은 공간이나 물질의 동일 연속체 안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속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이다. 그리고 하늘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늘은 땅과 접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존재는 동시에 땅의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승천이란 사람.. 더보기
6. 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곳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들어가는 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진보’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이 스스로의 힘으로, 심지어 하나님의 꾸준한 영향으로 인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하나님이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아예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원론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부활절에 예수님에게 하신 일을 이 우주 전체를 위해서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희망의 근본적 구조 첫째는, 창조의 선함이다. 이 세상이 선한 것은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자연’으로서가 아니라 창조물로서 선한 것이다. 여기에는 범신론이나 심지어 만유 내재신설의 암시가 전혀 없다... 더보기
5. 우주의 미래: 진보인가, 절망인가? /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들어가는 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위대한 사건을 기뻐하며 회상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구속주로 믿는 자신들의 유대교 신앙 때문에 그리고 이 신앙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건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활절에 시작된 일이 완성될 앞으로의 사건 또한 간절히 기대했다. 이처럼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는, 미래의 회복이라는 더 큰 그림! 선택1: 진화론적 낙관주의 진보의 신화가 갖는 진짜 문제는, 내가 조금 전에 암시한 것처럼 그것이 악의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룬다’는 말을 할 때는 그저 지적으로만 다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실제적으로 악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신화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심각한 악의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 그렇.. 더보기
12. 로마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죽음:새로운 출애굽 / III. 혁명적 구출 ● 로마서의 수수께끼 첫째, 로마서는 네 부분(1-4, 5-8, 9-11, 12-16장)이 마치 교향곡의 흐름처럼 함께 작용하면서 매우 절묘하고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은 나름의 내적 일관성과 문체, 분위기, 특징을 지닌다. 여러 면에서, 각 부분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확연한 구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분을 관통하면서 로마서 전체를 단단하게 묶어 주는 큰 주제의 일관성과 전반적 흐름, 여러 맥락이 있다. 각 부분의 내용은 전체 그림에서 해당 부분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말은 어느 한 부분만 따로 떼어 내어 ‘복음’의 진술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바울이 로마서 어느 대목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한 말은 그가 그 부분에서 제기하는 더 큰 주장.. 더보기
9장. 니체, 실용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Nietzsche, 1844-1900) 20세기는 "언어 철학"의 세기. 극단적인 유명론자. "권력에의 의지" "신의 죽음 ''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을추종, 물질주의자. 니체의 언어는 미국 실용주의의 언어(곧 진리는 유익한 것이라는 개념)를 예고. "시각주의''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 "유용성"의 개념을 인식론적인 범주 안에 적극 포함시킴. 그 결과, "실용주의"가 탄생. 퍼스의 목표는 철학을 좀 더 과학에 가깝게 만드는 것. "실용주의적 공리 " "과학주의(과학이 지식을 받는 궁극적인 현실이라는 신념) "는 퍼스 철학의 주된 특징이다.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 퍼스의 실용주.. 더보기
4. 부활절의 특이한 이야기 / 1부 배경설정 선례가 없는 이야기들 A.D. 30년(혹은 그 때가 언제였건 그 해)의 예루살렘 사건도 표면적으로 여러 내용들이 불일치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불일치는 오히려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케 하는 합리적인 징조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 사건의 첫 목격자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 줄 정도로 당황했던 것이다. (1) 첫째, 우리는 사복음서 이야기에서 이상하게도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부활 내러티브에는 두 개의 작은 예외만을 빼면 그러한 인용이 거의 없다. 이것이 더 놀라운 이유는,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부터 일찌감치 공동의 신경에서는 부활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일어난 일임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다른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