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 서적/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9_복음주의는 무엇이 좋은가제1차 대각성운동/제3부_복음주의는 어떻게 지성을 잃어 버렸는가/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회심했다면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알 수 있을까?

_제임스 맥그레디(James McGready)


채워질 수 없었던 덴젤의 지적 욕구


과거로 돌아가서


정체성 확인


승자는 누구?



                                                            표 9.1_ 종교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 1776년-1980년. 이 숫자들은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종교에서 멀어지고 세속화된다는 사회학자들의 

                                                             가정이 오류임을 보여준다.



                                                            표 9.2_ 교단별로 본 신자의 비율(전체 신자 수에 대비한 비율). 

                                                             1776년과 1850년 비교. 

                                                             왜 일부 교단은 하락하고 일부 교단은 빠르게 성장했을까?


승자는 제1차.2차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복음주의 집단이었고, 패자는 그 신생 독립국에서 일어난 자유 종교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실패한 기존 교회들이었다.


정부가 상처입은 자들을 도와줄 때


독립전쟁 이전의 미국에서는 법적 제도에 의존한 교회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사업이든 학교든 교회든, 독점은 게으름을 낳기 마련이다. 

제도화된 교회가 가장 먼저 신학적 자유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교회가 살아남으려면 그 시대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실상 그 반대가 참이다. 어느 역사를 보아도, 신자들이 주변문화와 거북한 관계를 맺는 종교집단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즉 어느 집단이 주류사회와 긴장관계가 강화될수록 성장률이 더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리다.

"종교기관은 그 구성원들에게 희생과 성흔(聖痕, stigma)과 같이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만큼 견고해지기 마련이다"_핑크와 스탁은 쓰고 있다. 많이 요구하는 종교는 많이 주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초자연적인 종교는 "이치에 맞는 종교"나 사회적 행동주의로 묶어진 복음보다 그 추종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요청한 다음에는 교리적 내용, 강렬한 영적 체험, 하나님께 직접적인 접근의식과 같은 훨씬 더 많은 보상을 준다.


서부 변경의 종교


                                                             표 9.3_ 미국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할 개척지가 존재했다.


복음주의 전도자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가르침 중심의 설교양식을 깨고, 청중을 위기의 순간까지 몰고 가서 회심을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서서히 자라는 신앙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한 번의 회심사건으로 충분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근거가 된다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폭풍을 뚫고 다니는 사람들


변경지방의 복음화

첫째, 강렬한 회심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종교를 감정의 견지에서 재정의함으로써 신학과 교리, 믿음의 인지적 요소 일체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성향은 기독교가 비인지적 상층부의 경험이라는 개념을 강화시킴으로써 엄청난 손상을 가져왔다.

둘째, 통속적인 언어와 쉬운 민요의 사용은 일반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부흥사들은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가서 신학교육을 영적인 죽음과 동일시하는 우매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셋째, 가정이나 교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개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신앙의 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에 대한 철저한 개인주의적 견해를 낳았고, 그 결과 교회사의 위대한 지성들이 수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풍부한 지적 유산을 배격하게 했다. 여기에는 신조와 신앙고백같이 믿음에 관한 공동선언 속에 담겨 있는 교리도 포함된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의 정치 분야에 유행하기 시작한 개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교회에 옮겨 놓았다. 원자론적이고 비의존적인 교회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흥운동은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낳았다. 목사는 더 이상 언약 공동체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수많은 청중을 감동시키는 능력을 지닌 유명인사였다.


미국을 휩쓴 휫필드


가슴 대(對) 머리

부흥사들은 정서적 회심((상층부)을 추구했고, 부흥운동을 반대한 이들은 합리적인 종교(하층부)를 변호했다.


도전적인 개인주의

개인의 선택과 체험에 초점을 맞추는 풍조는, 결국 기독교적 신념이 상층부에 속한 비인지적 현상이라는 관념을 초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