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전자에게 득이 되는 것은
"올바르게",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는 것이다
_로버트 라이트
그리스도인이 우리 문화에 구속(求贖)의 영향을 미치려면 다윈의 진화를 과학으로뿐 아니라 세계관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보편적 다윈주의
"이것저것을 조금씩" 보는 경향
폭넓은 개별적인 이슈들에 대해 우려하지만 그 점들을 모두 잇는 큰 그림은 보지 못한다.
"세계관의 전환으로 인해 초래되었다……. 궁극적인 실재는 비인격적 물질 혹은 에너지로서 비인격적 우연에 의해 현재의 형태로 빚어졌다는 사상과 그에 기초한 세계관으로 전환 된" 것이다.
신경체계가 어느 정도의 복잡한 수준까지 진화했을 때 뇌가 빠지기 쉬운 기능 불량 상태가 종교라는 것이다.
만인을 위한 진화
참된 이타주의야말로 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반증을 제공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9.11사태에서 우리가 목격한 영웅적인 자기희생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도덕적 존재-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강간에 대한 다윈적 근본주의 입장
진화와 유아살해
진화심리학의 치명적 약점은 너무나 신축성이 뛰어나서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현상과 더불어 그 반대현상도 설명하는 이론은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셈이다. 너무 융통성이 많아서 그 옹호자들이 무슨 말을 해도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의 파격적인 주장
문화는 일종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문화는 결국 지배적인 세계관에 따른 논리적 결과를 표현하게끔 되어 있다.
다윈화되는 문화
문호가 더 이상 생물학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문화 자체가 진화의 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은 모든 점을 연결시켜, 모든 것을 기원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 점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들이 "보편적 다윈주의"를 내놓으면, 우리는 "보편적 설계"를 내놓아야 하고, 설계론이 포괄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가당착의 논리
오늘날 관행적으로 실천되는 어떤 행위라도 생존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쨌든 그 행위가 우리 시대에까지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따라서 진화는 도덕적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없는데, 현존하는 관행을 판단할 수 있는 표준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이론 자체가 갖고 있는 논리적 결함이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만일 우리의 생각이 모두 진화의 산물이라면, 진화심리학이란 생각 자체도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정신이 만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진리가 아니라 생존하는 데 유용할 따름이다.
"일단 객관적 진리가 존재할 가능성 자체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 역시 객관적으로 진리일 수 없다."_다니엘 데넷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진술은 자기 파괴적이거나 자가당착의 어불성설이다. 어떤 철학이 어불성설임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철학이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확실한 표시다.
유전자에게 호수에 뛰어들라고 말하다
진화심리학이 실제적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아무도 그 이론에 기대어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 도덕적 선택의 실재를 확증하고 있으므로, 진화심리학자들은 그들의 결정론적 이론에 기초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도약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 간에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기계론적 철학의 속박(하층부) 아래 감금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가들은 종종 기독교를 비합리적이라고 배격하지만, 기독교는 비합리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신앙의 도약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격적 하나님에서 시작하고 일관성 있는 통일된 세계관을 제공하며, 이는 자연의 영역과 도덕적.영적 영역 모두에 걸쳐 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성경의 교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자유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기반을 제공하며, 이는 인간의 경험이 증언하는 바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와는 달리,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해서 일관성 있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세계관이 현실 세계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지도
세계관이란 세계에 대한 마음의 지도이므로, 그것이 정확하다면 현실을 제대로 항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의 세계관이 우리가 설명하려는 보다 큰 실재에 들어맞지 않을 경우, 어느 지점에 이르면 더 이상 그것을 따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세계관은 세계를 항해하는 데 유용한 안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관의 충돌
진화심리학의 출현은 다윈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그저 과학적 사실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충되는 세계관을 둘러싼 싸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계를 항해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의 지도를 둘러싼 논쟁이다.
우리 모두가 다윈의 진화를 둘러싼 논쟁을 이해해야 하고, 우리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공적인 광장에서 그것을 논의할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엄청나게 크다.
자연주의적 진화라는 지적 제국주의가 너무 거대해서 가치의 영역마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무모할 정도로 가치의 영토를 침략하고 있으며 한때 과학의 범위 밖에 있던 영역을 가지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종교마저도 자연선택의 산물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가치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인지적 거래에 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의 정신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향한 자연스런 추진력을 갖고 있다. 다윈주의자의 경우 그것은, 모든 것을 하층부로 끌어내려서 진화만이 통일된 총체적 체계가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체계를 반격하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에 그와 똑같은 총체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비합리적인 상층부로의 도약이 아니라, 전반적이고 일관된 세계관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채워주는 포괄적인 세계관을 뜻한다. 우리가 제시하는 믿음이 이성적 검사에서 면제된 주관적이고 사적인 신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변호될 수 있는, 객관적 지식에 대한 인지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딜레마
기독교 도덕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설계된 그 목적 또는 이상(telos)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개념에 기조하고 잇는 것이다.
하지만 다윈주의 체제 아래서는 목적이나 목적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격을 받게 되었다. 만일 세계 자체가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삶에 대한 설계나 목적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은 생물학의 산물로 환원되었고,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 안에 프로그램된 주관적 욕망과 충동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진화가 옳다면, 전통적인 목적론적 도덕 개념은 유지될 수 없다.
설계론에 담긴 해방의 메시지는, 우리가 다윈의 진화를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근대의 전형적인 이원론"에 기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설계와 목적이 다시 한 번 자연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여기에는 유기적 세계(세포와 DNA)와 물리적 세계(미세 조율된 우주)가 모두 포함된다. 그러므로 설계론은 총체적이고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회복하기 위한 과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의 이원론에서 우리를 풀어 주며, 다시 한 번 도덕을 객관적 지식의 한 형태로 논의하는 것을 타당하게 만들어 준다.
거듭난 다윈주의자들
* 기독교인에서 다윈주의자로 거듭난자들
- 회의주의자 협회의 회장이자 잡지 「회의주의자」(Skeptics)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a)
- 무신론자이면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 대학교 교수 윌슨(E. O. Wilson)
식탁을 교실로
포괄적인 자연주의 세계관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그와 똑같이 포괄적이고 원대한 힘을 가진"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에 가려고 집을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기독교가 종교적 진리일 뿐 아니라 모든 실재에 관한 진리임을 가르쳐서 미리 준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기독교는 총체적 진리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 정도의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세속세계에서 직면할 인지적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현대문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이런 생각들이 과학의 테두리를 넘어 폭넓게 퍼져 나간 경위를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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