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믕 공부를 시작할 때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를 보았다.
더 깊이 들여다보고는 파동을 발견했다.
일생동안 연구한 지금에는
모든 존재가 정보의 표현인 듯 보인다.
_존 힐러(John Wheeler)
우주가 설계되었다고 느끼는 의식은 하나의 직관적 인식으로, 태초부터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신자들에게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성적 직관이다. 우주가 고도로 질서 정연하여 어떤 사고력이 있는 지성 또는 창조주의 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과학혁명의 개척자들-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갈릴레이 등-의 과학적 발견에 영감을 준 것은 자신이 신적 장인(Divine Artisan)의 복잡한 계획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는 확신이었기 때문이다. 설계에 대한 직관이 그처럼 보편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엄밀한 과학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학연구 프로그램으로 공식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지적 설계 운동의 목표다.
작은 녹색 인간들
설계론의 핵심은 설계를 경험적으로 간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설계론은 일상적 직관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모든 과학이 공식화된 상식인 것과 마찬가지다.
설계를 간파하는 과정은 철저히 경험적이다. 사실, 그것은 이미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고학 분야 전체에 걸쳐, 연구자들은 실험이 조작된 경우와 누군가 그 결과에 손을 댄 경우를 증거 흔적을 통해 분볍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자연에서 우리는 지성의 징표들을 찾아낼 수 있다.
눈먼 시계공?
"생물학은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아주 복잡한 것들에 관한 연구다."_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자연선택이 바로 "눈먼 시계공"이다.
자연 선택은 "목적한 자의 개입 없이도 목적의 측면을 달성하고, 계획자의 행위 없이도 광대한 계획을 만들어 냈다."_ 조지 게일로드 심슨
진화의 개념을 지켜 내려는 진화 옹호론자들은 이처럼 자명한 설계가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으로 말미암은 기만적인 환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한편, 설계론자들은 명백히 설계가 존재하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이점을 갖고 잇지만, 그들이 할 일은 지적인 행위를 증명하는 믿을 만한 경험적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설계의 흔적들
첫째, 세포의 세계(생화학), 둘째, 우주의 기원(우주론), 셋째, DNA 구조(생물학적 정보).
세포 안에 있는 롤러코스터
자연선택은 사소한 무작위적 기능상의 진보에 기초해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느 정도의 기능이 존재하기 전에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시스템은 최소한의 부품들이 제자리에 있기 전에는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부품들 자체는 자연선택의 산물일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자연선택이 작동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최소한의 상호작용적 조각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6.1_ 분자 기계들. 세포 속의 여러 구조는 사람이 제작한
기계장치와 너무나 닮았다.
세포 속에 있는 작은 분자 기계들이 지성적인 행위자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베히와 블랙박스
지금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어떤 이론이든 분자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근거한 논증은 심리적으로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체(whole)가 어떻게 부분들로써 구성되는지에 관한 논리적 주장이다. 컴퓨터 내부와 같이 유기적인 구조는 사전의 청사진, 계획 또는 설계에 따라 조립된다. 서로 맞물려 있는 한 각 조각은 전체의 기능에 기여하도록 짜여져 있으며, 전체의 기능은 최소한의 조각들이 제자리에 놓인 다음에야 발휘될 수 있다.
이에 따른 당연한 의문은 생물의 구조가 집합체인가 아니면 유기적인 전체인가 하는 점이다. 전체 조직의 수준뿐 아니라 아주 작은 세포의 내부에서도 생물의 구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유기적인 전체다. 그렇다면 가장 개연성 높은 이론은 그 조각들이 사전의 청사진에 따라 조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우주
우주 질서의 우연한 발생
의식 있는 우주라든가 셀 수 없는 많은 미지의 우주들을 언급하는 복잡한 이론들은 설계의 자명한 증거를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유전자 코드를 작성했는가?
당신이 어떤 메시지, 어떤 언어를 볼 때 즉각적으로 그것이 자연적 원인의 산물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
우연에 의한 사건, 법칙에 의한 사건, 설계에 의한 사건
우연을 넘어서
우연이 복잡하고 세분화된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화학물질의 우연한 상호작용으로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합성물을 의미 있는 만큼 농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모든 연구자들은 우연에 기초한 이론들을 포기한 실정이다.
법칙을 거슬러서
생명이 정보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자연법칙은 정보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법칙은 규칙적이고 반복 가능하며 예측할 수 있는 사건들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은 실험이 반복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일한 조건을 재생할 때마다 동일한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실험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과학의 목표는 이런 규칙적 패턴을 수학공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어떤 메시지 안에 있는 철자들의 순서는 불규칙적이고 반복되지 않는 것인데, 이는 그것이 어떤 법칙과 같은 과정의 결과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햄릿」을 만들어 주는 규칙은 없다
진짜 알파벳에서 철자들이 이런 규칙을 따른다면, 몇 갖지 단어밖에 얻지 못할 테고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진짜 알파벳이 너무나 잘 작동하는 이유는 바로 철자들이 규칙이나 공식 혹은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매체는 메시지가 아니다
설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미 규정된 패턴에 맞는 불규칙한 순서다.
"DNA 분자는 매체이지 메시지가 아니다." 그리고 정보이론에 의하면 매체는 메시지를 쓰지 않는다.
물질이 생명을 낳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일 뿐 아니라 "잘못된 개념 차원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정보가 물질 내부의 자연적 힘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과 정보가 지적 행위자에 의해 외부로부터 물질 위에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증거
설계를 가리키는 표지는 정보이론이 지정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이라 부르는 것이다.
첫째, 우연만이 단순한 질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지만(단어 만들기 게임에서의 'it'과 'can'같은 짧은 단어들), 설계의 산물은 복잡하다. 둘째, 법칙들은 규칙적 패턴을 묘사하지만('DESIGN, DESIGN, DESIGN), 설계의 산물은 불규칙적 패턴을 보여준다. 셋째, 그 패턴은 미리 선정된, 또는 사전에 지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의 독특한 표지는 지정된 복잡성에 있다.
언어적 관습과 문법의 규칙이 화학적 반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정보와 지성이 속한 정신 영역에서 오는 것이다.
DNA의 구조는 언어 및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아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면 DNA 속에 있는 지정된 복잡성도 어떤 지적 행위자의 산물임을 추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처음부터 과학을 자연주의 철학의 견지에서 정의하지 않는 한 그 대답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를 활용하라
먼저 설계 추론이 무지에서 나오는 논증이 아님을 유의하라. 즉 어떤 현상의 원인을 우리가 몰라서 두 손을 들고 기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대신, 이 논증은 우연.법칙.설계가 산출하는 각각의 구조에 관해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어떤 현상을 접하든지 과학자는 그것을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에 통과시킬 수 있다. 그것은 무작위적 사건인가? 그러면 우리가 호소할 곳은 우연밖에 없다. 그것은 규칙적이고 반복된 패턴으로 발생하는가? 그러면 그것은 어떤 자연법칙으로 인한 것이다. 그것은 복잡하고 지정된 패턴인가? 그러면 설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성에 의해 산출된 것이다.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는, 서로 경쟁적인 이론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표면적인 세부사항을 뚫고 들어가는 데도 유용하다.
임의의 돌연변이들(우연)이 자연선택(법칙)의 체를 통과하게 되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유기체들이 더욱 잘 적응하게 되고 결국 설계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 다윈주의의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순전히 자연주의적 과정이 지적 설계의 효과를 모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설계를 하나의 독립된 범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윈은 지도되지 않고 목적이 없는 변이[우연]를 맹목적이고 무심한 자연선택의 과정[법칙]에 접목시킴으로써 생명의 과정에 관한 신학적 또는 영적 설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우연과 법칙은 설계를 모방하지 않는다.
생명의 기원 문제에 '설명을 찾아내는 여과기'를 적용해 보면, DNA 안에 있는 순서가 무작위(우연도)도 아니고 규칙적(법칙)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설계의 특징인 지정된 복잡성을 보이고 있다. 우연과 법칙이 우주의 역사에서 다른 많은 사건들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면 과학자의 도구상자에 또하나의 도구를 넣을 필요가 있다.
유기적 세계를 해석하는 열쇠가 자연선택이 아니라 정보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 분야에서 우리는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는 요한복음 1:1의 말씀이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헬라어 단어 '로고스'(Logos)는 지성.지혜.합리성 혹은 정보를 의미한다. 현대의 유전학은 생명을 신적 말씀이 들려주는 거대한 이야기라고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 같다. 즉 생명의 텍스트를 쓴 한 저자(Author)가 있다고 말이다.
상대주의를 수용한 그리스도인
우리는 잘못된 이분법, 곧 진화는 과학적이고 설계는 종교적이라는 식의 표현을 피해야 한다. 다윈주의와 설계론은 서로 다른 주제-과학 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일한 의문, 곧 우주에서 생명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경쟁적인 답변들이다. 양자 모두 과학적 자료에 호소하는 한편, 동시에 더 넓은 철학적.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설들력 있는 입장을 제시하려면, 먼저 우리의 사고 속에 있는 과학/종교의 이분법에 도전해야만 가능하다. 창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종교의 문제-개인적.주관적 가치관이라는 근대적 의미에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실임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종교와 도덕을 상층부에 속한 사적 체험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요정 이야기
만일 우리가 신앙을 사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면 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의 손에 놀아나게 되는데, 그들은 종교를 상층부로 밀어내고 만다. 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은 대놓고 종교를 거짓이라고 공격하기보다(그럴 경우 공공연한 반대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므로) 교묘하게 그것을 "가치"의 영역으로 내쫓는다. 그러면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예 토론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 우리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기존의 틀-그것을 심리적 필요의 표출로 환원시키는-을 통해 걸러질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요정 이야기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그 믿음을 변호하기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수용할 때 적어도 암묵적으로 그와 똑같은 입장에 서게 되는 셈이다.
자연주의자의 의자에서 일어서라
그리스도인은 과학적 활동을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초자연주의자의 의자의 관점으로 실재를 포괄적으로 인식하며 살도록 부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날마다 보이지 않는 실재의 차원을 의식하면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고후 5:7)한다는 말씀의 의미다.
설계론은 그리스도인들이 포괄적인 성경적 세계관의 렌즈를 통해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고 직업인의 삶에 있어서도 초자연주의자의 "의자"에 앉을 수 있음을 입증한다.
지적 설계는 과감하게 과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경험적 자료에 기초한 하나의 입장을 정립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를 영향력이 미약한 가치의 영역에서 끌어내고 객관적 진리의 영역에 말뚝을 박아 인지적 주장을 하게 한다. 지적 설계는 기독교로 하여금 참지식의 지위를 회복하게 하고, 우리가 공적 부문에서 기독교를 변호하도록 준비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지적 설계는 과학 분야에서 자연주의에 도전함으로써 신학.도덕.정치 그리고 다른 모든 분야에서 자연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자연주의가 과학의 둑을 넘쳐흘러서 문화의 나머지 분야에 깊이 침입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지적 설계가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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