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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박영선의 욥기 설교-박영선 목사

30. 하나님_네가 모두를 이길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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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0: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11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12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욥 40:1-14)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인정하라

네가 옳다고 하려고 나를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욥은 할 말을 잃습니다.

그의 비명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자신의 불만들과,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고 그 믿음을 놓을 수는 없는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욥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놓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신비한 붙잡힘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신자의 실제적인 신앙 현실은 자기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한테 붙잡혀 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이 창조주요 구원자요 심판자인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주와 역사와 개인의 운명에서 그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이 결국 승리할 것을 압니다. 그 증거를 예수 안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옳은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현실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이 안되고 답이 안되고 모순과 혼란과 모호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는 중입니다.

‘길들여야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다. 가축으로 붙들어 너희 식량으로 쓰기 위해서만 그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준 생명의 자유와 충만함과 기쁨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든 것, 예를 들면 밤, 악, 실패, 한계 같은 것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했다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욥의 이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욥이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면 욥에게는 좋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기를 포기하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주권자요 공의로우신 분이요 목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그저 우월한 인간에 불과해질 것입니다.


이해가 아니라 관계로 인도하심

인내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궁극적인 승리와 그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기억하고 우리 이해를 벗어나는 것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경험과 현실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이해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해라는 것은 존재의 기능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를 해서 존재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인식론을 가지고 출발하는 사람들의 신앙은 대단히 단단하고 분명하고 치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하나님을 이해 범주 안에 묶을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이해 범주 안에 묶을 수 없다는 것은, 욥기의 커다란 주제입니다. 욥은 결국 자기의 이해를 벗어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계시론으로 가는 것입니다. 계시론에 따르면 우리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해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우리라는 존재와 우리의 기능이 우리를 만든 자의 목적에 복종되어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고 믿는 것이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만족스럽고 달콤한 것이라고요? 누가 그럽니까? 그것은 일찍 죽은 사람들만이 하는 말입니다. 사랑은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줘도 모자라서 마음이 짜릿짜릿한 게 사랑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대표하는 두 단어는 믿음과 사랑일 것입니다. 둘 다 관계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것만큼 우리를 속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기대요 책임이요 운명이지 않습니까? 믿었는데, 그것이 속은 것이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믿습니다. 속는 것이라도 달게 여깁니다. 차라리 속아 주는 것이지 “너 가짜다”라고 밝힐 수 없는 것이 사랑 아닙니까. 그게 믿음 아닙니까. 지금 하나님이 그렇게 답을 펼쳐 보이시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결심과 이해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어떤 성실한 손에, 운명적인 손아귀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매 순간 다 만족스러운 것이 아닐지라도 외면할 수 없고 도망갈 수 없는 운명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다른 것으로 때울 수 없다

 ‘너는 알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하고, 내가 큰 것만큼 네가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라는 존재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힘으로 이기면 그만인 존재, 옳으면 그만인 존재보다 큽니다.
우리의 우리 됨도 그저 해결, 안심, 유능 이런 것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깊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후회하고 울고 돌이키고 하는 존재이며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존재, 각자의 존재 속에 모든 우주가 들어 있는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네가 모두를 이길 수 있느냐는 말 속에는 ‘너는 네 존재와 하나님의 자녀 됨과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알겠느냐? 그것은 다만 대적을 물리치고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다 파묻어 버리는 것으로 가지는 왕권이 아니다. 내가 창조와 역사 속에서 보인 것같이, 그리고 욥 네가 경험한 것같이 알 수도 없는 현실의 경험에서 더 깊고 더 놀라운 자리로 이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가 들어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훌륭해진다는 말은, 성적이 오르거나 시험을 잘 보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가장 고급한 가치를 배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매우 깊은, 하루에 할 수 없는, 전 인생에 걸쳐 배워야 하는 진리를 깨우치는 길입니다. 공짜가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훌륭한 모든 덕목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창고에 모아 둘 수 없고, 은행에 맡길 수 없는, 내가 그렇게 되어야 아는 것입니다. 뇌 속에 저장하거나 가슴에 품는 꿈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차적 본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훈련하여 만든 본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단련시키십니다. 감옥에서도 필요한 것은 성실함입니다. 그가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요셉이 괜히 붙잡혀 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실력이 만들어지는 동안 하나님의 손에서 도망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징징거리지 마십시오. 이것이 다 되기까지 다른 것으로는 때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정의로움과 성실하심, 은혜로우심과 선하심을 기억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우리의 길을 걸으십시오. 가장 막막할 때 우리의 훌륭함과 믿음이 빛을 발하게 하십시오.

기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우리로 하여금 기어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에 걸맞은 승리의 자리에 가게 하는 줄 알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지고 가슴을 펴고 얼굴에 웃음을 짓고 하나님이 부르신 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이웃을 돌아보고 용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