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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다시보는 로마서-박영선 목사

45.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_조역, 문득 드러나는 그분의 뒷 모습 / 4부 그러므로 형제들아(12:1-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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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18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1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25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롬 16:1-27)





위대한 조연들

“역사에는 위업과 주인공 같은 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일들과 기억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것으로 역사와 현재라는 현실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의심하거나 거부한다고 역사가 바뀌지 않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과 외면이 미래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다만 체념하거나 외면하여 비겁하게 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는 넉넉한 관용과 베풂이 신앙의 본질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분명함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으라, 그러니 그 분명한 신앙을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이분법으로 축소하지 마라, 타인을 정죄하는데 골몰하지 말고 오히려 마음껏 열어 두고 신자의 삶을 살아 내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간혹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결코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부 예수로 구원하신 존재요, 운명이라고 합니다.




연약함이 가지는 깊이

이사야 53장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메시아가 ‘인류 모두가 처한 상황까지 내려오신다’는 내용입니다. 메시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위에서 내려와 힘으로 우리를 붙들어 가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와 동참하여 우리를 항복시킵니다. 우리의 자리까지 들어오십니다.

그는 어떤 모양으로 오십니까?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 흠모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구체성과 인류 모두를 품는 넓이가 여기에서 증언됩니다. 여러분이 가진 억울함, 열등감, 자책, 자폭의 자리까지 예수가 오십니다. 나만큼은 하나님의 사랑에 예외라서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생각만큼 성육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성육신으로 드러난 성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이 왜 ‘예수를 믿는다’는 것으로 바뀌었을까요. 예수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설명의 구체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설명의 구체성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알 수 있게, 볼 수 있게, 이해할 수 있게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의와 하나님의 내어주심, 내려오심이 예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체적 통치와 은혜의 내려오심에 대해 내가 믿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려오심과 찾아오심을 우리는 예수로 갖고 있습니다. 예수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설명과 자기 자랑은 모두 우리를 품는 데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의 품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성육신입니다. 예수는 오셔서 삼십삼 년을 살다 가십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이웃과 정치와 사회, 개인의 개성 속에 묶입니다. 인간이 지닌 억울함의 자리에 묶이십니다. 예수는 공생애 속에서 이 세상이 만들 수 없는 초월적 힘을, 전능자의 권력과 지위와 그 영광을 문득문득 나타내시지만, 이런 권능을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이나 제한을 면제받기 위해 사용하시지는 않습니다. 배신당하고 오해받고 욕설과 수치와 고난 속에서 죽으십니다. 하나님이 죽음의 자리, 배신의 자리까지 다 품어 내신 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나는 억울해, 나는 외면당한 것 같아, 나는 아닌 것 같아, 라고 체념하는 것은 얼마나 무지한 짓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정답을 말하려 하지 마십시오. “너, 그래 봤자 소용없다. 네가 견뎌야 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네 고난을 알아. 너 정말 힘들겠다”. 이런 말을 해 주십시오. 이런 말이 제일 고맙습니다. 누가 내 고난을 알아주기만 해도, 내가 얼마나 가슴 아픈지를 이해해 주기만 해도, 아니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우리는 아픔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도 성육신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해결해 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구체적으로 품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하는 일은 명예에 관한 일이 됩니다. 믿음에 속한 우리의 자랑이고 영광이지, 구원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그 못난 자리까지 내려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자초한 채찍에 맞는 자리까지,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그 비난의 자리까지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너는 악역을 맡지 마라”. 해결해 주시지는 않고 그렇게 말씀만 하십니다. “너, 그 자리에서 웃어라”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웃으십시오. “거기서 웃어라. 너는 그 자리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한 역할을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영광이 드러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명예로운 길

가장 억울한 자리에서 가장 할 수 없는 일을 여러분이 감수해 내면 모두가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해결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영광된 역할로 살아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조건과 우리의 처지를 가지고 일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너는 나서지 마라, 너는 네 할 일을 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로서는 지금 내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묶여 있는 컨텍스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죽이지 마세요. 그 창을 도로 그 자리에 두세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에게는 작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에 불과한데, 주제넘게 작가가 되려고 하지 마시고, 자기 역할을 하십시오. 멋지게 해 내십시오.

이 명령들을 행하라고 요구받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명예로운 자리를 허락받아 거기에 서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명예로운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기 자랑을 기억하십시오. 죄인들을 참으시고 자기를 내어주어 항복시키시는 것으로 자랑과 영광을 삼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인생을 사는 것은 그 영광과 명예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상황이 억울하면 웃으십시오. 침묵하고 양보하십시오. 여러분 평생에 다른 것으로 얻지 못했던 명예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란 하나님의 고귀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힘으로 이기면 영혼은 말라 버립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참된 자랑으로 채우기 위하여 말씀을 따르십시오. 웃음에 조롱을 담지 마십시오. 웃음에 친절과 따뜻함을 담으십시오. 여러분의 존재가 비난과 두려움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멋지게 사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고함지르지 않고 웃고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반가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나와 묶어주신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겠습니다.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되어 우리 옆에 오면 쉼과 여유가 있는 그런 인생으로 살겠습니다. 이 명예로운 자리를 놓치지 않는 우리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