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1-12)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
하나님의 일하심이나 우리의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져야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비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한 심판권은 하나님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 먼저 태어나고 나중에 태어나고, 먼저 깨닫고 나중에 깨닫고 하는 순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평면적 차원에서 대등한 이들의 우열을 비교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현실에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 말고는 신앙의 내용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말고는 그 밖의 문제에서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다들 각자의 신앙을 다른 방식으로 확신하는 셈입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어떻게 묶이는지를 알았다면, 또한 컨텍스트에는 공간과 틀만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요소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공간적 차원이나 구조나 틀이나 형식이나 원칙만을 고려하지 않고, 그에 못지않게 시간에 대한 이해를 담는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따지는 앞서고 뒤서고 하는 문제는 컨텍스트일 뿐입니다. 지금은 우리 뒤에 있는 연약한 이가 장차 어떤 본문을 담을지는 우리가 알 수도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각각에게 주어진 현실과 정황과 조건을 긍정적으로 감수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특히 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로 묶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깊고 넓고 더 놀라워야 합니다.
신앙의 전부를 담으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 지금의 현실, 자신의 지위 그리고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이웃 안으로 우리가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모두를 하나로 묶으시는 예수
강한 자와 약한 자 정도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 자와 죽은 자는 예수 믿은 자와 안 믿은 자입니다. 이 둘을 다 예수 안에서 묶으시려고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모두의 주가 되시려고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모두의 주인이 되려고 하신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의 주로 오시며,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주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로마서 14장은 구체적으로 신앙의 삶을 살기로 한 자들에게, 즉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는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생명과 사망이라는 묶을 수 없는 간격을 묶으시는 예수라는 것을 기억하여 신앙생활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요구입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여기 있습니다. 구원을 주신 이가 구원을 완성하시며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를 교리적으로는 ‘성도의 견인(堅忍)’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성패는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미 약속하셨고 목적하신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고 완성하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입니다.
우리의 인생, 우리의 고백, 우리의 운명이 예수로 확인되고 있으며 예수의 부활을 분명한 증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언제든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이란 같은 교회 공동체 내에서 모두 마음이 같고, 뜻이 같고, 표현이 같고, 척하면 알아듣는 일사불란한 신앙 행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웬수들과 같이 서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교회 나올까’하는 질문이 나오는 정황 속에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실은 중요합니다. 이를 살아낼 실력이 없으면 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조건을 기꺼이 감수하라
성령 충만은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피차, 어떤 피차일까요?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 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기꺼이 감수하라, 그 조건 속에서 일하라는 말입니다.
부부란 무엇일까요? 평생 일치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부부는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안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십니다. 만일 부인이 없다면 남자들은 백 프로 방탕하게 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탕은 단지 윤리적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술 먹고 노래 부르며 살지, 절대 일하러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는 바보 같은 남편에게 묶여 있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고 살지 않을 것이고 억척스러워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기한 점은 부부로 살면서 위대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내 하나 만족시킬 수 없는 남편으로, 남편 하나 믿고 살 수 없는 아내로 도망갈 수 없게 인생에 새삼스레 묶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크고 위대해집니다. 이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컨텍스트입니다.
생명과 진리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진리를 알게 하는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생명을 키우시는 그의 능력을 우리에게 베푸시지 않으면, 승리와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의 본문을 우리에게 심으시지 않으면, 어떤 컨텍스트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여기서 일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립니다. 오늘을 살아 냅니다. 자기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보이는 지금의 정황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귀 기울여 순종합니다.
우리는 컨텍스트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잠시 도망갈 수 있습니다. 안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텍스트를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산 자와 죽은 자라는 구별 없이,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에 담긴 깊이와 넓이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또한 믿고 있다면, 우리가 살아내지 못할 컨텍스트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과 현실과 지위를 불평하고 비교하고 다른 쉬운 것으로 확인하려고 들지 말고, 각자의 조건에서 억울함과 막막함과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면서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종종 순종이나 인내로 대체됩니다. 왜 그런 말을 쓰는지, 왜 시간이라는 개념이 동원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성숙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따뜻한 눈을 가지는 것, 무슨 일이든 감수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 지점에 오면 그런 것들을 아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거기는 보이는 것, 편안한 컨텍스트 같은 것으로는 갈 수 없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매일 텍스트를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기도
우리의 존재, 조건, 현실, 도전, 숙제, 의심, 불안, 공포,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아래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되게 하셔서 우리가 세상의 빛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라는 것을 자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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