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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다시보는 로마서-박영선 목사

40.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_하루,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위대한 지금 / 4부 그러므로 형제들아(12:1-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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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1-14)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컨텍스트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컨텍스트를 텍스트로 오해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라는 존재와 자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력이 있고 자신을 증명할 만한 어떤 재능이 있더라도 말하자면 배알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컨텍스트 속에 넣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아무런 지위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을 뿐입니다. 신분도 확보되지 않은, 그저 소리일 뿐인 존재였습니다. 우리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컨텍스트 속에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죽어날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죽어 버리면 그만인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컨텍스트 속에서 부여받은 지위와 역할입니다.



못난 인생 속에 본문을 담으시는 하나님

성경은 한번도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것 같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진심, 선, 종교, 임무라는 이름으로 안심을 얻고 자존심을 채우고 싶어 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그렇게는 못하시겠다고 보여주신 것이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못난 인생에게도 퍼부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신실하심과 능력을 찬양합니다, 그들의 생애를 모든 인류와 후손에게 유익으로 남기시며 결코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요, 이 못난 것들 속에서 직접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자기 본문은 둥실 솟아나는 해처럼 어찌 이렇게 크고 밝은지요, 라고 모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못난 인생,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이 하찮은 인생 속에 하나님이 본문을 담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본문이 되려면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데, 세상은 죽음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무슨 풍성함이나 깊이가 있든 그저 헛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본문을 가집니다. 부활을, 용서를, 회복을, 승리를, 영광을, 영생을 이야기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우리 인생 속에 담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자꾸 컨텍스트에 관한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 무엇을 담으셨습니까? 죄를 씻어 주시며, 죽음으로 끝날 인생을 부활로 승리케 하시며, 하나님을 떠나 폐허가 된 인간의 심령에 찾아오시고 그와 화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을 이루시는 분이 예수입니다. 그의 모습으로 이것을 만드십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 이렇게 예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불러 세상의 조건, 현실, 구조, 틀, 배경, 무대 속에 넣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만이 본문을 담을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이 된 것입니다. 가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지위와 역할을 감당하십시오.



반복되는 하루에 담기는 텍스트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나는 뒤에 있는 것은 모른다, 나는 오늘을 살 뿐이다, 이와 같은 바울의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내가 사는 오늘은 하나님이 나를 넣어 두신 컨텍스트다, 본문을 담으려고 이 컨텍스트를 주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내 삶에 어떤 가치가 있으며 내 삶이 어디까지 왔는가, 이런 것은 나는 모른다, 단지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것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라는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하루는 어떤 하루입니까? 여러분이 평생 겪어 온 하루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이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루이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자신의 존재가 거부당하는 것 같은 그 하루입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본문을 담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와 하루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오직 보이는 것으로만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다만 종교라는 이름을 걸고 떼쓰는 사람에 불과해질 것입니다.

세상의 도전과 시험 앞에 텍스트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컨텍스트 경쟁이 아닙니다. 지위나 권력이나 능력을 가져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의 인내와 성실과 겸손과 믿음으로만 빚어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매일 여러분의 삶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무엇인가 하십니다. 주님이 일하십니다. 단지 아직 내 눈에 안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더 큰 하나님의 일하심을 담아내는 인격

술 취하는 것은 생각 없이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을 왜 방탕하다고 할까요? 술 취하면 깨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과 맡은 역할과 책임이 마구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을 마구 써 버리면서 넋두리나 하고 분노하는 것으로 소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처한 보잘것 없는 지위나 억울한 상황에서 감당하는 일이나 세상이 보기에 높은 지위에서 큰 책임을 맡는 것이나 그 가치는 똑같습니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넘어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국가나 사회나 이상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격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갖다 붙였던 어떤 덕목이나 이상도 인격이 없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애국이나 인류애나 희생이라는 위대한 이름이 붙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해하여 여러분의 삶을 다만 착함, 다만 겸손함 같은 소극적인 것에 멈추지 말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더 큰 일하심을 담아내는 인격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당한 현실을 인격으로 감수해 내십시오. 울기도 하고 한숨도 쉴지언정 결코 도망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기적을 이루시고 있음을 인생에서 확인하십시오. 어떤 조건이나 어떤 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만나십시오. 성경에서만 이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현실과 인생에서 이 기적을 누리시며 이 일에 주인공이 되는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기도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길이었습니다. 이 길에서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과 구원과 영광과 승리로 우리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 길을 주께서 걸으셔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길을 뒤좇아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원망과 분노만 있는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을 증명하는 귀한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명예와 승리와 영광으로 살아내는 믿음의 큰 복도 모두의 심령에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