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하나님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포로기의 종말이라는 약속을 드디어 성취하셨을 때—우리가 보았듯이, 이는 포로기의 원인이었던 죄의 용서를 뜻했다—이스라엘 백성 전체나 그 백성의 특정 집단은 극렬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해야 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언약적 사랑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의 언약 백성을 구속하실 때 그것은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의 결과일 것이다. 성경이 약속하는 구속은 자기 백성에 대한 변함없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 때문에 몸소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을 포로기에서 구출하는 것과 새로운 출애굽이라는 강력한 새 일과 그에 수반된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 자기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깨지지 않는 언약적 헌신의 직접적 결과인지를 지속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약속이 등장하는데, 그 약속은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이 열방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비유대 민족들도 나름의 출애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말로 혁명적이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앞선 본문들의 독점적인 내용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제 이 사랑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시의 도입부인 이사야 40장 1절에서부터 52장 9절(“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까지 펼쳐지는 하나님의 이 위로 메시지는 “종”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53:3는 단락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폭넓은 맥락에서 이 단락을 읽으면, 이 본문이 강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 이상하고도 충격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의 죽음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궁극적 형벌로 보는 53장 직후에 우리는 언약이 재차 확인되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죄를 용서받고, 포로기가 끝나며, 여호와와 그 백성은 영원히 하나가 된다
이사야는 물론, 신명기, 시편,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을 구하셨다. 구원은 모두 그분이 시작하고 성취하셨다. 그분의 사랑이었다.
● 구속과 죄 사함
첫째, 이 고대 저술들은 제2성전기 하나님의 백성에게 한편으로는 ‘포로기의 종말’이, 다른 한편으로는 ‘죄 사함’이 필요했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죄가 포로기의 원인이었기에, 용서와 ‘귀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신약성경에서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의 요약을 만날 때 이것이 그런 언어의 자연스런 근거지다. 포로기를 원상태로 되돌려 놓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포로기를 불러온 죄가 영원히 해결되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혁명적 관점의 단초다.
둘째,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 위대한 사건은 궁극적인 새로운 출애굽, 최후의 유월절이 될 것이다. 바벨론에 대한 승리는 애굽에 대한 승리의 축소판이다. 출애굽의 이미지들을 단락마다 적용해 보면, 각기 다른 본문에서 바벨론이나 시리아나 로마를 다룬다 하더라도 고대 애굽의 종살이 기억은 절대 멀리 있지 않다. 죄 사함과 포로기의 종말 그리고 유월절과 출애굽이라는 이 주제들을 한데 모으면, 유월절이 이전에 뜻한 바와 속죄의 날 자체가 뜻하는 바를 초월하는 완성된 구속이라는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죄 문제의 해결, 포로 귀환, 하나님나라와 그 관련 사상들을 다루는 개념들과 불가분하게 하나로 합쳐진 유월절 사건들의 구체적인 설정을 특별히 강조할 때 이 사상들의 조합은 자연스런 의미 맥락을 제공한다.
셋째, 유월절 배경은 (구출과 여호와의 임재라는 극적인 주제를 통해) 이스라엘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강력한 사역을 통해 구속이 임할 것이라는 의미에 일조한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 위대한 용서와 새로운 출애굽의 강력한 동인으로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을 발견할 때, 곧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들이 특히 이사야서와 다니엘서에 집중된 이 전체 서사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 ‘종’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들을 성취하실 오실 왕이라면, 우리는 그의 끔찍한 죽음이—일부 시편의 도움을 받아—그분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일로 비쳐질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아직 왕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던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서야 했다. 그는 온 백성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종’은 백성의 오래된 죄악의 결과들을 스스로 떠맡으셔야 했다.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사야 42:1) ‘종’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의 사랑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는 방법밖에 없다. 첫째,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통해 구원이 올 것이다. 둘째, 거기에는 극심한 고난과 죽음이 동반될 텐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포로기를 불러온 죄들이 마침내 해결될 것이다. 셋째, 이 성취는 여호와 자신의 사역이 될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을 주장하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던 새롭게 서술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고, 유월절 시기 예수님의 죽음 이야기를 말한 것을 볼 때, 이런 것들이 그들이 의도한 주제였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이 곧 그들이 새롭고 결정적이며 혁명적인 대단원을 형성한다고 본 서사들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그들은 구원의 관념적이지 않은 목표를 어렴풋이 보았고, 이방인의 표현보다는 유대인의 표현에서 이 목표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 첫 번째 성금요일 저녁에, 옛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죄가 해결되고 권세는 무너졌다.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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