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저자들은 철학을 영적 싸움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다(골 2:8 참조).
속사도 교부들
정경이 완성된 직후의 기독교 사상가들을 " 속사도 교부들"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사도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증가들
1. 유대인들
2. 로마인들
3. 헬라 철학
4.이단,특히 영지주의 - 영지주의는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보다 먼저 일어난 종교 운동이었지만, 그것과 공통점이 많았다. 영지주의도 신플라톤주의처럼 존재의 단계를 인정했다. 그 맨 위에는 최상의 존재( 이 존재는 명칭이 없지만 이따금 "비토스"와 같은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가 반(半)신적 중재자들을 통해 물질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그 중재자들은 "이온"으로 불리며 "로고스", "조에", "프뉴마 ", "프시케"와 같은 이름을 지닌다. "타락"은 이 존재들 가운데 가장 저급한 존재가 실수로 물질세계를 창조하면서 발생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갖혀 있기 때문에 영지주의 교사들을 통해 다양한 지성적, 도덕적 훈련을 받음으로써 다시 이름 없는 최상의 존재에게로 흡수되어야 한다. 영지주의는 유한한 물질세계에 갖힌 것이 우리의 문제이고, 그곳에서 벗어나 신과 중 합일을 이루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 역사의 초창기에 유행했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대표한다.
영지주의는 극단적인 초월(3)과 극단적 내재(4)라는 논법을 구사한다. "비토스"는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초월). 그러나 다른 현실은 촛불에서 나오는 빛처럼 모두 그에게서 방출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신성을 소유한다(내재). 이것은 비토스를 전혀 알 수 없지만(불합리주의), 그의 본성과의 합일을 통해 그를 온전히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합리주의). 우리는 영지주의자들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통해 그와 합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합리주의). 그러나 궁극적으로 비트스에 관한 지식은 그에 관한 명제적 지식이 아닌 그와의 합일을 통해 얻어진다. 이것이 지식의 궁극적 단계다. 이것은 궁극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불릴 수도 있고, 명제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불합리적"으로 불릴 수도 있다.
영지주의에서 "가현설(Docetism) "과 같은 초기 교회 이단 사상이 나왔을 수도 있다. "가현설"은 예수님이 실제로 육체를 소유하지 않았고, 단지 육체를 소유하신 것처럼 "보였다(헬라어 "도케어")"는 견해를 가리킨다. 가현설은 물리적인 세계를 거부하는 영지주의 사상에서 비롯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Justin Martyr, 100-165)
로고스는 우주의 방향을 이끌고, 인간의 이성으로 그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합리성의 원리다. 로고스는 "씨앗으로서의 로고스(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 곧 만민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의 씨앗으로서의 이성을 가리킨다.
"부정 신학" 또는 "부정의 길(via negative)"로 알려지게 되었다.
"자유의기록적 자유"
유스티누스는 인간의 철학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옹호했던 수많은 기독교 사상가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기 위해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 130-200)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의 가르침을 들었다. 영지주의와 특히 마르시온을 배격했다.
성경 신학의 시조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c. 160-220)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부터 라틴어로 기술된 신학이 처음 시작되었다(이레나이우스와 초기 교부들은 헬라어를 사용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C lement of Alexandria, 155- 220)
오리게누스( Origen, 185-254)
사벨리우스주의(양태론)
영혼선재설(피타고라스와 플라톤에서 그 전례가 발견)
승리자 그리스도 속죄론
만물 회복설
종속설(성부로부터 성자의 존재가 파생된 것으로 간주)은 아리우스 이단을 위한 전례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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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Athansius, 200-373)
;아리우스 논쟁을 통해 명성을 떨침.
"아리우스(c. 256-336)"와 그의 제자들은 좌파 오리게누스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요한복음 1장에 근거해 종종 말씀으로 일컬어졌다)이 지고한 차원에서의 하나님, 곧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말씀이 우주의 다른 존재들을 창조하는 데 개입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이라고 믿었다(요 1:3). 그들은 "한때는 그(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문구( 엔 포테 호테 우크 앤)를사용했다. 이 문구는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이 문구는 일정한 때를 가리키는 헬라어 "크로노스"가 아닌 어떤 시점을 가리키는 헬라어 "포테"를 사용했다. 아리우스자들은 미묘한 구별을 의도했다.
그들은 말씀을 성부보다 열등한 존재론 간주했고, 당연히 예배도 성부보다 덜 받아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말씀은 "유일한 하나님(호 데오스)"이 아닌 "하나의 신(데오스)"으로 일컬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리우스자들의 용어들과 그것들을 사용하는 논증 방법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이 구사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말씀과 성령이 온전한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사람은 아리우스가 최초였다.
325년에 아리우스 논쟁을 다루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공의회는 아리우스주의를 거부하고, 곧 성자가 "동일 본질"을 소유한다고 선언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니케아 신조를 다시 확증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
마니교는 우주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 빛과 어둠, 선과 악)로 구성되었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천사들과 인간이 그분께 불순종함으로써 악이 초래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을 밝혀 자기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이해하도록 이끄실 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종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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