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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하나님 나라의 비밀-스캇 맥나이트

하나님 나라는 희망이다 - 스캇 맥나이트 / 하나님 나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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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희망이다 

- 스캇 맥나이트 / 하나님 나라의 비밀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는 "지금"이기도 하고 "아직"이기도 하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성대한 교제

거룩한 땅의 도성 "예루살렘"

신약성서가 묘사하는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는 재건되고, 개혁되고, 조정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재생된 예루살렘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예루살렘이다.

하나님 나라의 첫번째 이미지는 세상적인 것(earthly), 즉 하나님 나라 백성인 교회의 성대한 교제다.

확대된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를 축하하는 교제 속에서 서로와 함께 거한다.


심판

하나님이 이 세상속으로 들어와 잘못된 것을 끝장내시고 옳은 것을 세우시는 것과 상관이 있다.

유대인들의 심판의 맥락은 세상적이다.

예수는 심판관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로 통하는 문이다. 비록 종국에는 그 나라가 성부 하나님에 의해 통치될지라도 그러하다.

심판은 세상적인 것이며 예수에게 중요하다

심판은 징벌을 포함한다

파멸

심판은 갱신을 포함한다


완전한 공동체

유토피아(utopia)

첫째, 유-토피아(u-topia)는 상상으로 이루어진 미래의 현실이다(유토피아는 "없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접두사 u와 "장소"를 의미하는 명사 topos의 합성어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실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둘째, 에우-토피아(eu-topia)는 유토피아를 지금 이곳에서 구체화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그리스어의 접두사 eu는 "좋은"을 뜻한다. 따라서 에우토피아는 좋은 곳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가 꿈꿨던 미래의 하나님 나라가 유-토피아인 반면, 지금 출범한 상태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에우-토피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그 핵심에 메시아를 둔 신정정치다. 

반정치적인(anti-political), 과정치적인(hyper-political).

신정정치는 세상의 정치적 법칙을 넘어선다.

장엄함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때에는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원래 되어야 할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영광"

그 나라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성자가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중심 이야기가 형성된 하나님의 면전에서 열리는 영원한 잔치가 될 것이다.

유토피아적 공동체

악이 제거되고 오직 선만 남아 있는 사회.

첫째, 하나님에 의한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 의한 통치를 수반한다.

둘째, 그것은 정의, 평화, 사랑이라는 특징을 지닌 사회를 수반한다.

"그리스도의 중심성"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 하나님 나라의 백성, 교회)의 완전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하나의 교제,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사회!


축복

"복이 있도다"

첫째, "복이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하나님에게 복을 얻는다.

둘째, "복이 있도다"라는 단어에는 분명히 종말론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관심이 들어 있다.

작동주에 있는 세번째 주제는 조건성이다.

네번째 요소는 인간의 관계적 성향이다. 

복을 얻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로 인해 구별된다.

마지막 요소는 전복적 혹은 대조적이다.

예수의 축복은 대항문화적이고 혁명적이며 따라서 문화를 뒤집고 사회를 전복시킨다.

예수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축복하지 않는 이들을 축복한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 이 복됨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무조건적이고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길어지고 높아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순전한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희망

희망에 닻을 내림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희망을 제공하는 이유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그런 희망을 발생시키는 데 있다.

최족적인 하나님 나라를 예기하는 식탁 교제 / 

에수의 식탁 교제 행위는 단순히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래의 나라를 지금의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1-14)

유-토피아가 에우-토피아가 되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식탁 교제가 점점 더 위의 요한계시록 5장에 묘사된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집중적이고 의도적인 포용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두가 환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초대되고 환영받는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지금 우리가 이와 같은 집중적인 포용력 안에서 살아가면서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낳는 것과 상관이 있다.

심판을 갈망함/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 질서의 수립을 통해 이루어진 희망을 약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이들의 숨은 행위를 드러내시고 질서를 세우실 다가올 심판에 비추어 용서의-그리고 가능하다면 화해의-과정을 통해 그 질서에 기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용서를 가능케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왕이신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그것을 가능케 하신다. 심판의 여파를 우리의 세상 속으로 가져오는 그 어떤 행동도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용서를 재연하고 다시 표현한다. 그 심판이 죄들을 호명할 것이기에 우리의 용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호명하시는 것을 호명하려 할 때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가해자 쪽의 시인과 고백을 필요로 한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자행된 죄들에 대한 우리의 심판 역시 화해가 일어나려면 그전에 죄에 대한 시인과 고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나는 용서(forgiveness)와 화해(reconciliation)을 구분한다. 전자는 희생자가 행하는 것을 묘사하고, 후자는 희생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가해자가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할 경우에 일어나는-일을 묘사한다.

유-토피아를 알고 있기에 에우-토피아에서 가능한 정도 내에서 용서와 화해에 헌신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지금의 하나님 나라의 교제 /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복된 삶을 목표로 한다

복을 얻는다는 것은 곧 최고의 의미의 행복을 누리며 성대한 삶 속으로 이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 원한다.

둘째, 우리 모두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것을 행복과 연관시킨다.

셋째,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이런 선한 기쁨들은 유-토피아에서 맛보게 될 최종적인 기쁨에 대한 에우-토피아다.

넷째,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내 자신 안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경험도 만족시킬 수 없는 갈망을 발견한다면, 그것에 대한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내가 다른 세상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C. S. 루이스

끊임없이 계속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됨은 사랑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과의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우며 강렬한 관계다.

참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됨을 가리키며, 동시에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첫째, 예수 그리스도(복음)를 통해 다른 이들과의 연합을 제공하며,

둘째, 하나님 나라의 교제를 통해 다른 이들과의 연합을 제공하는 

복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 안에서 기쁨으로 가득 찬 영광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