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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하나님 나라의 비밀-스캇 맥나이트

교회의 사명이 곧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 스캇 맥나이트 / 하나님 나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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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명이 곧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 스캇 맥나이트 / 하나님 나라의 비밀


하나님을 위한 거처

첫째,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교회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위한 거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현존이 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의 사명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중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혹은 교회)의 사명이 교회 안에서 구체화되는 은혜와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지혜에 대한 제사장적 중재를 통해서, 그리고 왕이신 예수가 부드러우며 종처럼 봉사하는 다스림으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복음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로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정치 역학으로서의 교회

둘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교제 혹은 하나님 나라의 정치 역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철저히 정치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수의 정치 역학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통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전을 구체화한다. 아니면 하나님이 구체화하도록 교회를 고안하셨다. 

예수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살아냄으로써 우리가 사는 곳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에 대해 바라는 것은 먼저 그들이 속한 교회에서 현실로 목격되어야 한다. 교회가 국가에 대해 바라는 것을 스스로 구현하기 전까지 그 교회의 증언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살아내고 전해야 할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A-B-A')다. 문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둘을 동일시할 때, 그것은 우상숭배가 된다.


왕이신 예수 아래서 살기

셋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왕이신 예수 아래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성서에 기초해 정의한다.


지역 교회의 교제

넷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지역 교회의 교제를 형성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모이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통해 평범한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백성이다.


자유민

다섯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이 세상에서 자유민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왕이신 예수의 통치를 받으며 교회라고 불리는 하나님 나라의 교제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들의 문화의 지배적인 이야기들에서 자유로우며, 동시에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라고 명하시는 일을 행해야 한다.

질서 잡힌 삶

여섯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지역 교회의 교제라는 상황 속에서 왕이신 예수의 통치 아래서 질서 잡힌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선을 위해 공적 영역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

일곱째,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공적 영역에서 사랑에 의해 추동되어 "선한 행실" 혹은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교회일 때 그 교회는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사랑하는 일에 온전하게 개입한다. 그런 교회는 온 세상에서도 가장 사랑스럽고 동정적이고 공정하고 평화롭게 세상의 일에 개입하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교회야말로 세상과 사회가 하나님의 세상과 하나님의 사회가 되기 위해 그리로 소환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현실이다. 

어떤 행동들에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할당함으로써 그 행동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거나, 초자연적인 것으로 정당화하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는 의식을 심어줘서는 안된다.


소명에서 선교적 태도 취하기

여덟째,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제자들이 그들의 소명에서 선교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우리의 깊은 소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 혹은 (예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이 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다. 선교적이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몸을 돌려 이웃들 속으로 들어갈 때만 시작될 수 있다.

다음, 우리의 소명은 우리의 "직업들" 배후에 있는 기본적인 - 이 단어를 무겁게 강조하자 - 동력은 우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것이다. 모든 직업은 그것을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향하게 할 때 소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셋ㄱ적인" 직업을 "종교적인" 직업처럼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직업이 우리를 위해 하는 첫 번째 일은 우리의 생계를 잇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직업이 하나님 나라(교회)의 사명에 의해 삼켜질 때 그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우리 자신이 왕이신 예수를 향해 돌아서기 전까지는 소명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선을 위해 행하는 일은 소명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오직 우리 관심의 촛점을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교회)로 돌리는 정도만큼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스스로 살아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토대 위에서 다른 이들에게 왕이신 예수의 통치 아래 사는 삶을 가리키고 그들을 교회라고 불리는 하나님 나라의 교제 안으로 인도하는 정도만큼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복음을 통해 형성된 교회의 사명으로 보이는 정도만큼 하나님 나라의 사명인 셈이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어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예수가 만들어내고 있는 특별한 문화(교회,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서다. 우리는 그렇게 그 문화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모종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 즉 소명을 지닌 사람이 된다. 우리의 직업을 소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 그것이 교회를 향하고 있는가? 이것은 오늘날 노동자들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사회정의, 사회복음, 그리고 해방신학

아홉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 사회복음, 그리고 해방신학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게 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은 그 뿌리를 교회에 내리고 있으며, 왕이신 예수에 의해 창조된 도덕적 교제와 비전으로 인해 공적 영역으로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지역 교회라는 상황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일을 희생해가면서 이런 종류의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은 선하지도 옳지도 않다.


하나님 나라의 저항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저항에 직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바라시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상황에 미치지 못할 때, 교회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들고 일어나 우리를 소환해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사명을 이뤄나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