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3. 관련된 성경구절들의 해석/
II. 본론: 신학과 법학의 만남/
바울신학의 새 관점과 정지조건부법률행위:신학과 법학의 만남-김병국/
신앙과 학문 제20권 제4호(2015. 12)
이와 같은 논의가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1) 유언
십자가가 구원을 위한 조건의 성취이며 그 효력이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소급되는 것이라는 개념은 이미 신약의 기자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신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지조건부법률행위'와 가장 유사한 개념은 '유언'이다.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1)유언은 1)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1)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1)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히 9:15~17).
히브리서라는 책이 기록된 배경은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대다수의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핍박을 받는 데 지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며 교회를 떠나려 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의 조상들이 예수님을 믿었는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 아니다.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조상들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굳이 이렇게 핍박을 받아가며 예수님을 믿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겠지만 우리 유대인들에게는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율법이라는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지 않겠는가?'[대부분의 주석들은 히브리서의 수신자가 유대 기독교인이었다는 점, 그들이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 Cf. 존 칼빈, 1992: 31-35; Hewitt, 1982: 36.]
당장 매일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기독교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논리였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려는 그들을 붙들기 위해 쓰인 책이 바로 히브리서이다.
16절과 17절에 등장하는 '유언'은 15절에 등장하는 '새 언약'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실제로 헬라어 본문에서 '유언'이라는 단어와 '언약'이라는 단어는 '디아쎄케'(diatheke)라는 같은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유언은 그저 개인적인 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히브리서 본문에서 사용된 '유언'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디아쎄케'(diatheke)는 대단히 엄숙한 용어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을 가리키는 단어가 '베르티'인데 구약의 헬라어 번역성경인 70인경에서 이 단어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디아쎄케'를 선택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선포하신 언약을 말한다.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옛 언약은 모세를 통해 주셨던 율법의 언약을 말한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1)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5-20).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로서 옛 언약의 저주를 온전히 자신이 짊어지셨고 또한 완전한 순종을 통해 옛 언약이 약속했던 복을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게 하셨다(Lane, 1991, 2007:116).
새 언약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자들은 첫 언약 때에 죄를 범한 자들이다. 그들이 구원을 얻는 것은 15절에서 말하는, 속량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떻게 해서 그들을 구원하는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일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16절과 17절에서 유언에 대해 설명한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나타나야 한다(16절). 여기서 유언한 자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뜻한다.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언은 효력이 없다(17절). '정지조건부법률행위'는 '정지조건'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예수님이 죽으셨다. '정지조건'이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옛 언약 때에 죄를 범했던 자들 즉 구약의 성도들이 속량하심을 얻는다(15절).
히브리서 9장 15절 이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유언의 유효조건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지조건부법률행위'의 '정지조건'과 잘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