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보수적인 신학자들의 대응/
1. 바울의 새관점과 신학자들의 딜레마/
II. 본론: 신학과 법학의 만남/
바울신학의 새 관점과 정지조건부법률행위:신학과 법학의 만남-김병국/
신앙과 학문 제20권 제4호(2015. 12)
바울에 대한 샌더스의 새로운 해석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될까? 첫째, 구약 종교가 자체적으로 구원의 능력을 가진 종교가 된다. 샌더스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구약의 율법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이도 자체적인 구원의 방편을 지닌 종교가 된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다.
둘째, 이것은 신약의 진정성에 큰 타격을 입힌다. 샌더스의 주장은 바울이 유대교를 오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샌더스는 자신이 발견한 언약적 율법주의가 유대교의 진정한 종교패턴(pattern of religion)인데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유대교는 이 패턴과는 전혀 다른 낯선 종교라고 주장한다. 샌더스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신약 성경이 오류를 전제로 하여 그 위에 구원의 교리를 쌓아올리고 있다는 주장이 된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이다.
셋째, 샌더스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유대인 선교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구약 종교가 완전한 구원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종교라면 현대의 유대인들에게도 십자가의 복음은 필요가 없게 된다. 복음은 오직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 된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된다. 이것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청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유대인인 베드로가 유대인인 공회원들 앞에서 한 말인데, 여기서 '천하 사람' 중에서 유대인들은 제외된다는 암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보수적인 기독교 학자들은 샌더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샌더스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모세, 다윗, 그리고 구약시대의 여러 선지자들이 자신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흔적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려 하자 출애굽기 32장 32절에서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탄원한다. 자신의 구원을 확신했다는 증거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회개하며 지은 시인 시편 51편 12절에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개 회복시켜 주시고"라고 말한다. 다윗은 끔찍한 범죄로 인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잃었을지언정 그가 구원 자체를 잃었다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없다.
샌더스가 옳다고 한다면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여러 문제들이 생긴다. 하지만 구약 성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① 종교개혁자들은 바울이 유대교를 율법의 행위로 의로움을 얻으려 하는 율법주의적 종교로 그렸다고 성경을 해석했다.
② 그러나 샌더스는 유대교인들이 율법을 지킨 것은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서가(getting in) 아니라 언약 백성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staying in) 주장 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샌더스는 유대교의 이런 종교패턴을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라고 불렀다.
③ 학자들은 샌더스의 주장에 대해 다양하게 비판을 하고 있지만 구약 시대 유대교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④ 실제로 경건한 구약 성도들이 자신들이 언약 백성에 속해 있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이나 경건한 선지자들이 자신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에서 배제될 것을 두려워하며 평생을 살았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구약 성도들의 구원과 예수님의 십자가와의 관련성을 밝히는 일이다. 그들이 십자가 없이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 이외의 다른 구원의 방편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샌더스가 말한 언약적 율법주의인가? 그렇다면 지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