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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학문 제20권 제4호/바울신학의 새 관점과 정지조건부법률행위: 신학과 법학의 만남-김병국 백석대학교 신학교수)

바울신학의 새 관점과 정지조건부법률행위: 신학과 법학의 만남-김병국/ 신앙과 학문 제20권 제4호(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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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의 새 관점과 정지조건부법률행위: 

신학과 법학의 만남-김병국/

신앙과 학문 제20권 제4호(2105.12)





Ⅰ. 서론: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구약의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들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Ⅱ. 본론: 신학과 법학의 만남

1. 바울의 새 관점과 신학자들의 딜레마

일반적으로 개신교 신학자들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 왔다: a.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함으로 구원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ㄷ)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b.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길이 제시되었다. 그것이 복음이다. c. 그런데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직도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생각하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일에 집착했다. d.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구원의 방편이 아님을 주장하며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1977년 미국 듀크대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샌더스(E. P. Sanders)는 이런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제기했다.


(1) 바울 신학의 새 관점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의 '패턴' 혹은 '구조'는: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2)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3)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4) 순종에 대한 요구이다. (5) 하나님께서는 순종에 대해 상을 베푸시고 범법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신다. (6) 율법은 속죄의 방법을 제공하는데, 속죄의 결과는 (7) 언약관계의 유지 혹은 재정립이다. 순종,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언약 안에 머무는 모든 이들은 구원 받을 그룹에 속해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포인트의 중요한 해석은 선택과 궁극적 구원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주장하는 유대교의 종교패턴과 사도 바울이 묘사하고 있는 종교 패턴의 가장 큰 차이는 '의로움'(義)의 개념에서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유대교에 있어서 의로움(righteousness)이란 선택받은 그룹에 속해 있다는 신분의 유지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반면 바울에게 의로움이란 이동을 뜻하는 용어이다. 즉 유대교에서 언약에의 헌신은 어떤 이를 그 그룹 '안에'(in) 있게 만들고 이어지는 순종(의로움)은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 준다. 반면 바울의 용법에 따르자면 '의롭게 됨'(be made righteous, be justified)이란 구원 받은 그룹 안에 머무는 것(staying in)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getting in)을 지칭하는 용어이다(Sanders, 1977: 544, 필자의 번역).


바울은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이동(transfer)을 의미하는 동사로서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어에는 그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다. 샌더스는 유대교에서는 의롭다는 것이 형용사적인 개념이어서 토라에 순종하는 사람을 '디카이오스' 즉 '차디크'하다고 부르는 반면, 바울에게 있어서 이 개념은 동사적인 것이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어떤 사람이 '의롭게 된다'(dikaiousthai)고 말한다고 한다. 샌더스는 '의로움'의 개념 자체가 이렇게 다른데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니"(en nome oudeis  dikaioutai)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Sanders, 1977: 545). 원래 율법이란 신분의 변화, '이동'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하는 것은 유대교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단지 그가 새롭게 발견한 종교인 기독교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율법을 행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는 그것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Sanders, 1977: 551). 그러므로 샌더스에 따르자면 바울은 유대교를 오해한 것이다. 유대교는 자체적인 구원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관점에서 유대교를 비판하는 일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