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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소명-오스 기니스

12. 소명의 공동체/소명(The Call)-오스 기니스(Os Gui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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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명의 공동체

/소명(The Call)-오스 기니스(Os Guinness)


예수님의 소명에는 개인적인 차원이 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개별적인 소명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소명도 부여하신다.


언약 공동체

예수님의 부르심은 모든 현대적 추세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부르심은 불가피하게 공동체적 부르심이다. 교회라는 단어는 대중의 '회합'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세속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어원은 '불러내어진'(call out)이란 의미가 있고 구약 성경의 관점으로는 '불러내어진 백성'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 결국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받아 그분께 속한 그분 백성의 회합이다. 믿음의 한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하나의 교회가 여러 장소에 있는 것으로 신약 성경을 보면 나온다. 각각의 지역 교회는 전체 교회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대변하는 만큼 교회는 지역적이면서 보편적이고, 가시적이면서 비가시적이며, 전투적이면서 승리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회의 개념이 모호한 신비주의 속으로 증발하지 않는 것은 바로 소명 때문이다.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합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몸의 지체들과 엮어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실제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산다.

교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이야기처럼 한 백성의 이야기이지 그저 개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약의 출애굽기 이전의 동일한 개인들과 가족들의 후손이 해방과 언약의 행위에 기초해 이제는 하나의 백성이요 하나의 공동체(이스라엘 백성)로 융합된다. 자원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 즉 하나님의 부름받은 자들의 회합이 서게 되었다. 이들은 하나의 언약에 의해 함께 묶여 있으며, 개개인의 소명을 보완하고 초월하는 공동체적 소명을 실천하고 있다.




공동체적 소명 의식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공동체적 소명에 헌신한다는 것은 현대의 무관심한 개인주의 성향에 단호히 저항해야 함을 뜻한다.

개인주의에 대한 도전으로는 정기적이고 신실한 예배에 헌신하는 것인데, 이는 많은 사람이 좀더 현실적으로 느끼는 문제로서 해결하기도 쉽다.

둘째, 우리의 공동체적 소명에 대한 헌신은 모든 개인적인 소명을 추구할 때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적과 유익을 존중해야 함을 뜻한다.

'특정주의'(particularism)의 오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에 관해서 확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데 연유한다. 그분이 그렇게 의도하신 것은 분명 아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만드신 것을 그리스도인이  상대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상대적으로 두신 것을 그리스도인이 절대화하는 것도 똑같이 잘못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중요한 도덕을 약화시키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사소한 도덕을 크게 강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체스터튼(G. K. Chesterton)은 썼다.

하나님이 확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관행(정치적 결정, 생활 방식 혹은 어떤 것이든)은 기독교적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상치된다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나 어떤 관행에 대하여 "이 관행만이 기독교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라"

그리스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독교적 수단은 그리스도의 목적을 전복할 것이고, 그들의 지혜롭지 못한 방식은 전 교회의 얼굴에 먹칠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우리가 공동체적 소명에 헌신한다는 것은, 개혁은 지속되어야 하며 심지어는 개혁을 개혁하는 것도 필요함을 기억하는 것이다. 

'항상 개혁하고 있는'(Semper Reformanda). 우리 모두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의 개혁' 자발적인 원칙과 자발적인 운동.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간의 신비로운 연합.

'원죄'뿐 아니라 좀더 긍정적인 개념인 공동체성-'그리스도의 몸'과 '성도의 교제'와 같은-은 영광스러운 복음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믿음의 삶에 존재하는 공동체성을 인정하고 유지한다면 우리의 소명에 충실할 뿐 아니라 온전한 인간됨에도 충실하게 된다.


■ 묵상 질문

당신은 '제도적인 교회'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당신은 믿음의 공동체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당신은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에 헌신되어 있는가? 당신은 부족이나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에 근거해 모든 국가를 하나로 묶는 비정치적이고 비민족적인 교회를 믿는가? 나사렛 예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