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무신론적 철학의 가정(假定)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_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기원에 관한 이론이 세계관 형성에 토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각 세계관은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것이 타락과 구속의 개념을 좌우한다. 따라서 한 문화의 창조신화를 만드는 권위를 가진 자가 실질적인 "제사장"이며, 그에게 지배적인 세계관을 정할 권세가 있는 셈이다. 그리스도인이 오늘날의 세속적 "제사장"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원을 둘러싼 논쟁을 파악하고 그것이 현대의 사조에 미치는 폭넓은 영향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인 산화(酸化) 현상
우리 세대에 기독교 세계관을 변호하려면 이 "확고히 자리 잡은 교회"에 도전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단계는 그것이 교회-신념의 체계나 개인 철학-임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일이다. 과학이라는 상표로 포장돼 팔리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실제로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유물론이다.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적 "가치"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판을 뒤집기 위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이용할 수 있는데, 진화 자체가 사적이고 주관적인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공격적인 철학적 개종 활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수용 거부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수준의 자연주의
요즈음에는 어린아이들조차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철학적 쟁점들을 적절한 쟁점들을 적절한 틀로 다루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일까지 망설이지 않고 수행할 것이다.
과학의 홍보요원들
다윈의 부리
그림 5.1_ 다윈의 핀치새들. 부리 크기의 변화는 새들이 불리한 환경 아래서도
핀치새로서 생존하게 하는 하나의 순환적 변이었다.
기능 장애를 가진 초파리
그림 5.2_ 정상적인 초파리와 날개가 네 개 달린 초파리.
돌연변이는 개체가 더 약해지기 때문에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더 적다.
다윈주의가 적자(適者)의 생존은 설명할지 모르나 적자의 도래는 설명하지 못한다.
얼룩나방
그림 5.3_ 나무 몸통에 앉은 얼룩나방. 연출된 사진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가장 유명한 날조
그림 5.4_ 헤켈의 배아들.
다윈은 진화론 "확증"에 지나친 열정을 품은 한 지지자에 의해 오도되었다.
그림 5.5_ 헤켈의 그림과 실제 배아의 모습.
헤켈은 이미 당대에 사기꾼으로 비난받았다.
허튼소리 탐지기
*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난데없이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는 간헐적인 분출로 인해 전반적인 안정 기조가 깨어지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진화는 영향력 있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위기에 처한 이론」과 같은 상태다. 다윈의 점진주의는 그 신빙성을 잃어버렸으며, 그것을 대체하거나 널리 수용될 만한 대안적 메커니즘은 아직 없다.
펑크 과학자들
새와 박쥐와 벌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다른 근거-철학적 근거-에 의존해 자연만이 생명의 모든 형태를 창조할 역량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이미 철학적 자연주의에 설득당한 셈이다.
고학이 실제로는 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의 진영에 흡수되어 흔히 응용된 자연주의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직 자연주의적 이론만이 용납할 만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모든 자료가 지적 설계자를 가리킨다 하더라도, 그런 가설은 자연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서 제외된다."
"그는 그것이 진실인 것을 "아는데" 유전자나 실험실이나 화석에서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철학 속에 깊이 박혀 잇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_톰 베델
다윈의 경우, 진화는 특정한 이론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었음이 확실하다. 즉 자연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어떤 메커니즘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경험론적 발견이기보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추론된 것이다.
신의 발을 문 안에
종교가 되어 버린 진화론
구출 작전에 나선 버클리
그리스도인들이 끝없이 분열한다면 세속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존슨의 전략: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싸우는 짓을 그만두고 함께 힘을 모아 세속세계와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배후를 공략하자고 촉구한 것이다. 이른바 자연주의적 철학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싸움의 핵심은 우주가 지적 행위의 결과인지 맹목적이고 비인지적인 힘의 결과인지 여부에 있다. 따라서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적인 문제들은 접어놓고 우주에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닫힌 체계, 꽉 막힌 지성
제1 원리의 문제에 이르면, 사실상 대안이 많지 않음을 지적하곤 했다. 실은 단 두 가지밖에 없었다. 우주는 원인과 결과의 닫힌 체계이거나 인격적 행위자의 산물인 열린 체계이다. 그에 따른 모든 것은 이 근본적인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은 우주가 닫힌 체계인지 열린 체계인지 여부에 있으며, 이 기본적인 대립에 초점을 맞추면 루터의 금언처럼 공격받고 있는 지점에 우리의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적 담론의 장에서 발언권을 얻다
그리스도인이 넘어야 할 첫째 장애물은 종교가 참된 지식일 수 있다는 개념을 다시 도입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이성적 토론의 영역에서 다시 불러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공적 담론의 장에서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를 우리의 개인적 가치관이 아니라 객관적 지식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의 인식의 영토에 말뚝을 박고 그것을 방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알고 있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믿음을 언급할 때 가치관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를 진리나 증거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비인지적 범주로 축소시키려 할 떄, 우리는 이미 싸움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만연한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피해 통일된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 버리는 것이다. 지적 설계 운동의 보다 큰 의미는 기독교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일 터이다. 이 운동은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 활동의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기독교를 참된 지식의 지위로 회복시키고 공적 담론의 장에서 의석을 되찾게 해준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종교와 도덕을 비이성적.주관적 체험으로 축소시켜 그것들을 변두리로 밀어낸 장본인인 사실/가치의 이분법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연주의적 진화에 대한 소극적 비판을 넘어서서 설계를 지지하는 적극적 증거를 내놓고 가능한 연구조사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 서적 > 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7_다윈주의의 보편화 현상: 오늘은 생물학, 내일은 세계/제2부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서/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0) | 2015.11.20 |
---|---|
6_ 상식에 기초한 과학/제2부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기/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0) | 2015.11.18 |
4_ 영적 황무지에서 살아남으려면/제1부 세계관이란 무엇인가?/완전한 진리- 낸시 피어시 (0) | 2015.11.14 |
3_ 종교가 있어야 할 자리/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0) | 2015.11.12 |
2_ 다시 찾은 기쁨/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 (0) | 201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