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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다시보는 로마서-박영선 목사

21.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_고난, 상속자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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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2-17)





더 이상 정죄가 없는 지위

우리가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는 지위와 운명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이 로마서 8장의 이야기입니다. 법을 기준으로 하면 정죄가 나오지만,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심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잘못할 때가 있더라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된 다음에는 이 관계가 깨어지는 법은 없다, 잘못하면 혼나더라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렇게 더러움과 부끄러움과 못난 자리에서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도록 인도 받는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로마서가 제시하는 큰 틀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이라는 방식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율법과 대조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자가 스스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충족하여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 은혜와 선물이라는 방식으로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차별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 곧 잘했고 못했고의 구별이나 유능하고 무능하고의 구별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입니다. 구원이 이렇게 선언되었습니다.

이렇게 선언된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서 얻는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른 표현으로는 믿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받은 의는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자비였다, 이것이 복음이 성립되는 방식이다, 라고 4장이 설명합니다.

죽음을 향해 가던 인생에서, 못나게 살던 인생에서 부활과 영광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는 바로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멋지게 해 보아야 할 것 아닌가, 이것이 답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에 너희가 아담의 후손으로서 속수무책으로 죄의 권세에 붙잡혀 있었다면, 이제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다, 라고 합니다. 이 두 상태가 대조됩니다.

우리는 못났고 또한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승리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며,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각자에게서 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사망에게 지지 않는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사망이 우리에게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생명이 우리를 주장합니다. 사망은 우리를 위협할 것이며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여러 번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넘어짐은 넘어짐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 것입니다. 그 넘어짐이 우리를 더 단련하고 더 깊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회개는 죄목을 낱낱이 아뢰는 회개 기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자폭과 실패에서 끝나지 않게 나를 붙잡아 일으키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회개 기도는 힘이 붙습니다. 회개해서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수 있다, 일어설 수 있다, 용서받을 수 있다, 돌이킬 수 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회개 기도를 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몇 번을 넘어져도 좋다, 하나님이 다시 일으킨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는 참다운 회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고난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만이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와 성의와 능력을 동원하여 죄 가운데서 꺼낸 당신의 백성을 고난으로 집어넣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은혜와 능력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으로 보내십니다. 고난으로 보내십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부르심이라서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육신’은 하나님 없이 사는 존재나 삶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그분의 자녀로 존재하며 하나님과 긍정적 관계 속에 사는 인생을 ‘영’이라고 합니다. 이 ‘영’이라는 단어는 ‘성령이 임하셨다’를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체험적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증언이신 성령이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예수가 누구신가를 증언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와 그의 죽으심을 빼놓고 성령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과 긍정적 관계,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에 들어와 살게 된 존재와 삶의 방식을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하신 것처럼 고난을 통해서만 이 구원의 궁극적인 자리와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삶은 고난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는 삶이 빚어지려면 고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을 따르는 삶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처럼 십자가와 고난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외면당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


십자가를 지는 길로 가야만 이 신령한 생각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체화하시는 방법이 우리가 갖는 막연한 기대와 얼마나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인생 속에 묻혀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임무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은 세상에 묻혀 외면당하는 인생을 기꺼이 걷게 됩니다.
그 자녀의 대표인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구원하시되 십자가의 고난으로 열어 놓아서 만든 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신비 곧 고난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 그 외의 것들은 그저 부록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 자리, 우리의 형편, 우리의 거부, 불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과 경륜과 복 주심과 능력 안에 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이 자리에 오게 하셨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믿음을 고백하게 하셨으니 이제는 충성하겠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조건을 감수하고 자랑스럽게 예수께서 가신 길을 뒤좇겠습니다. 믿음과 담력, 용기와 인내를 허락하사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우리의 생애에 마음껏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