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 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11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14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 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 21:1-34)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의 문제
‘너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증거가 많은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제시하는 바와 같이 그렇지 않은 증거도 그만큼 있다. 삶이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더라. 거기에서는 답이 안 나오더라. 하나님에게 물어보는 수밖에는 없더라. 우리가 서로 싸우면서 얼마든지 증거를 가져올 수는 있는데, 그것으로 상대방을 항복시키지는 못하더라. 나도 그것으로 답이 되지 않아 이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나님에게 답해 달라고 부르짖는 중이니 제발 좀 내버려 둬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누구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하나님이 너희 말대로 일하시더냐?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지적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는 신앙생활하면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성경입니다.
믿음은 인격적 신뢰
사탄은 인과관계를 깨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존재의 지위와 인간의 존재의 지위가 근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깨어지는 속에서 인과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신비한 무엇이, 인과관계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깊은 관계로 욥을 인도합니다. 이런 욥기의 증언 앞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율법 외에’라는 것은 ‘인과관계가 아닌 다른 법칙으로’라는 뜻입니다. 다른 법칙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법칙입니다.
믿음이란 인과관계가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가지는 인격적 신뢰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 단어 자체에 나타나듯이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해관계이거나 논리적이거나 기계적인 관계가 아닌, 보다 고급한 실력과 존재의 인격적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베푸신 것은 다만 기계적 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로만 이루는 관계의 정상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여기서 말하는 ‘의롭다’는 말의 뜻은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정상화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정상화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관계의 정상화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관계는 좋아서 미치겠는 것입니다. 잠시도 생각을 중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뭘 잘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모든 소망과 기쁨과 열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축복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로 묶습니다. 예수 안에서의 약속의 성취와 완성을 말합니다. 욥은 이제 이 부분으로 인도되어 가는 중입니다. 자신이 기대하고 자신이 이해했던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찾아오심과 요구하심 앞에 그는 비명을 지르고 혼란 속에 빠지지만, 그렇게 해서 인과관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인생에 왜 고난이 있냐고 물을 때, 성경은 이 이유 때문이라고 예언합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에 지은 죄를 오래 참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오랜 시간을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래 참으시고 드디어 해결하셨습니다. 그 해결도 예수의 죽으심, 그의 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이루셨습니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도 목숨을 건 방식으로, 또 우리의 경험 속에서도 죽어 나가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정상화를 요구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복 주신 우리가, 이제 그의 창조의 영광이 되고 찬송이 되는 그런 관계의 정상화입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는 방식의 깊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으로까지 가는 그 깊이를 우회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이 일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나님이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악당들을 다 죽이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는 쉬운 방법으로는 일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고귀한 자리로 끌어가시는 하나님
한 인간과 영혼을 만족시키시고 높은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각자의 생애를 귀히 여기십시오. 예수의 생애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애였던 것같이, 그러나 전 인류와 역사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이었던 것같이, 우리에서 생애 또한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열심과 능력으로 붙들 생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는 우리들도 이해가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더 높고 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만큼의 하나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형통한 날과 처참한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와 성실하심 속에는 후회할 날도 필요 없는 날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길이 바로 신자가 걷는 길입니다. 예수로 하여금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신 이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라고 기도하였으나 결국에는 순종한 길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는 각자의 생애와 인생이 되십시오. 옆에서 세 친구가 뭐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를 어떻게 축복하셨고 승리하게 하셨는지 아는 날이 올 것입니다.
기도
우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삶이 고단하여 몸부림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날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과 인생에 귀한 것을 주시는 날입니다.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확인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앞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빛이요 소금인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우리를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복 주시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부러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길을 피하여 도망가지 말게 하옵소서.
박영선의 욥기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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