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1-6)
죄에 대하여 죽다
우리에게 권세를 휘둘렀던 그 죄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로마서 6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와 우리의 연합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함께’라는 말이 거듭 강조됩니다.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고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죽어 버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만 책임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는 아무 상관도 없게 된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음이 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없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복에서 벗어나고 이탈하자 사망이 찾아옵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만드시고 보존하시고 채우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공급이 끊기면 부패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부패를 도덕적 현상에서 많이 확인합니다. 하지만 부패는 도덕성의 싸움이기 이전에, 마치 냉장고에 전기가 끊겨서 음식이 썩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음식에서가 아니라 전기의 전원이 끊긴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들은 온통 더럽고 거짓된 죄의 증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런 행동이 인간에게 가득하게 된 것일까요? 인간이 하나님을 외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패의 상황에 예수께서 오셔서 죄를 없애셨습니다. 죄를 없애심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하나님 자신이 걷어치우심으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죽으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이 사망을 없앴다고 합니다.
사망은 로마서 6장의 설명을 따르면 죄의 삯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궁극적 운명, 죄가 도착하는 지점이 사망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영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는 영생과 영광과 승리가 결실되며,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곳에서는 결국 부패와 왜곡과 소멸과 멸망밖에는 열리지 않습니다.
부재(不在)에서 임재(臨在)로
우리가 하나님을 거부하여 죄를 불러들인 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죄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없음입니다. 하나님 없음이 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등을 돌려 하나님 없음을 자신에게 불러들였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기로 하셨습니까? 예수를 보냈습니다. 요한복음 1장처럼 빛이 어두움에 찾아온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췄으되’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그리하여 부재를 없애십니다. 부재의 자리에 하나님이 친히 오셨는데 어떻게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고개를 돌렸으나, 고개를 돌린 바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들어 오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묶여 사망의 자리, 부재가 만들어 낸 운명, 부재의 권세, 부재의 결국에 따라 들어오셨습니다.
임재와 임재의 주인을 부재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임재의 주인을 부재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망은 예수를 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부재가 결국 예수로 말미암아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재의 자리에 찾아와 사망의 운명에 있는 우리의 자리 곧 죽음의 자리에 이르자 사망이 손을 놓고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는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연합하여 죄가 만들어 낸 궁극의 자리인 사망에 이미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더 이상 남편에게 책임이 없듯이, 우리 또한 죄에 대해서 책임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죄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죄의 권세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로마서는 이 모든 일을 예수께서 이미 이천 년 전에 이루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게 되었으니 더 이상 죄 아래 종노릇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사망 권세를 꺾어 허락하신 다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설 자리를 잃게 된 죄
홍해를 갈라서 구출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애굽 쪽에서 보면 자기네 종들이 홍해에서 다 빠져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입니다. 죽었으니 이들은 애굽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질 수 없게 됩니다. 애굽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권리를 잃게 됩니다.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은 것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사망의 권세에 붙잡혀 있던 우리의 인생을 끝내신 것입니다. 애굽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 애굽의 권세 아래에서 신음하던 모든 사정이 끝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건너편 시내 광야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물에서 육지로 다시 나옵니다. 새로운 종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제 애굽에 있지 않고 약속의 땅에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출애굽입니다.
애굽은 자기네들의 힘을 유지해 주었던 노예들을 전부 다 잃게 됩니다. 그들이 다 홍해에 가서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은 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따라 들어와 홍해에서 죽은 것은 그런 의미를 지닙니다. 죄가 더 이상 권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죄가 부릴 백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죄도 죽습니다.
죄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없음, 곧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거부한 그 자리까지 쫓아들어 오심으로 부재를 다 걷어치우자,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외면한 자들 앞에서 힘을 쓰던 권세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죄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어 없어집니다.
자신을 죄에게 내주지 말라는 명령은 너희가 살아난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봅시다.
국면이 바뀌어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자 그동안 ‘하나님 없음’속에 있던 부패, 왜곡, 헛됨, 더러움은 사라지고 명예로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라진 하나님의 부재
은혜는 지위이며 기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 기쁨의 인생이 펼쳐진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은 명예로 가는 길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에 담긴 뜻입니다.
언제나 잘하게 되고 무슨 일에나 옳게 되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느 차원에, 어느 영역에, 어느 약속에 들어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 안 들으면 버리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할 때에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 혼자 두지 않는다, 그러니 멋지게 되라는 말입니다. 그런 보장과 큰 격려가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너 자신을 죄에게 바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은 영광스러운 초대입니다. 헛고생할 것 없다, 네 인생을 살아라, 내가 너를 훌륭하게 인도할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은 이것 하자, 내일은 저것 하자,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매일 찾아오십니다. 자, 오늘은 무엇을 그려 볼까, 오늘은 어디를 찾아가 볼까, 말씀하시면서 말이죠. 오늘은 그렇게 우리에게 날마다 베푸시는 놀라운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신 이후 하나님이 우리 곁을 떠나 계신 적은 없습니다. 그의 부활과 함께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확인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어디나 함께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이런 명예로운 지위를 알아야 합니다. 은혜가 우리를 이 자리로 인도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 부터 14절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부재는 없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나는 너희가 나를 외면한 자리까지 찾아갔고 너희가 초래한 사망의 자리까지 찾아가 너희의 하나님이 된 아버지다, 이것은 네가 각오하고 이해하고 결심하고 순종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내가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이룬 인생이요 운명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죄와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끝났습니까? 부재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 부재의 영역, 부재의 자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신자의 멋진 삶
이제는 멋지게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 제물’이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산 제물이 아닙니다. 너희의 살아가는 삶을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통치를 아는 자로서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 삶에는 죄의 뿌리가 아직 뽑히지 않은 채 신자를 위협하고 유혹하는 이 세상의 현실과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른 현실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만사형통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 속에서가 아니라, 아직도 자기가 주인인 것같이 굴며 우리를 속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삶인지, 우리에게 준 영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떤 것도 예수 안에서 약속된 것을 침해하거나 손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낼 수 있는 멋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 자리에 찾아가서 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사망의 그늘이 늘 습격해 옵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이 빛과 생명으로 살아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으며 또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증명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멋진 삶입니다.
삶은 멋지고 위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죄에게 넘겨주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거나 혹 넘어지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그것을 안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멋진 신자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인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인생은 대단한 것이야’라고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다’. 신자의 위대함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무엇을 하기에 앞서, 포기하지 않고 감수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 실력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폭과 체념으로 여러분의 삶을 방탕에 방임하지 말기 바랍니다.
자폭하거나 핑계대지 마십시오. 새삼스럽게 어쩌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너희는 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러면 돼?”라는 말은 꾸짖자는 것이 아니라 신자로서의 명예를 가지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을 확인시켜 주는 말입니다.
웃어라, 괜찮다, 내가 있다, 너는 네 할 일 해라, 얼굴을 활짝 펴라, 가만히 있으면 찌그러지니 일부러라도 얼굴을 펴서 현실을 멋지게 살라는 것이죠.
다른 사람이 격려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 확인해 달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 기꺼이 잠잠한 양같이, 주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을 그렇게 걸어가 얻게 되는 깊고 따뜻한 눈빛을 가지게 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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