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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박영선의 욥기 설교-박영선 목사

04 엘리바스_도덕 질서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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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5: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 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 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 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욥 4:1-5:27)

견고한 도덕 질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도덕 질서의 견고함.
인과응보, 즉 보응의 원리
인간을 지혜로운 자와 우매한 자로 나눕니다.

도덕 질서로 욥을 속박하다


욥기의 중요성은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다만 명분으로 붙들어 맬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는 것을 알려 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욥은 보응의 원리를 벗어난 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등장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만나야겠다고 합니다.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도덕 질서가 전부이고, 욥은 이 도덕 질서를 만든 이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법이나 질서나 명분이 최종 권위가 되면 결국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것이 사람을 위해서 주어졌다는 것을 평생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의 지혜에서 판단을 보여 준다는 것은 사법적이고 형법적인 재판을 떠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율법과 도덕과 양심이 있는 것은, 생명을 다스리고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것보다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법을 주신 하나님, 도덕을 주신 하나님이 생명을 주어 생명을 보전하시고, 그 생명들에게 복 주기 위하여 질서를 주셨다는 사실을 욥의 친구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도덕 안에, 율법 안에, 논리 안에 사람을 가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스스로 원했거나 스스로 연구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는 그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임무보다 큰 인생

인생은 임무보다 큽니다. 사람은 임무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임무가 있다 할지라도 생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고난이 이어지는 것이 통상적이고, 언뜻언뜻 구름 사이로 달빛이 한 번 비치듯이 그렇게 문득 한 번씩 얼굴을 내밀고 사라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지금 욥과 친구들이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은 하나님의 통치가 도덕 질서 이상이라는 것을 아는 자리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기 현실이 도덕 질서를 벗어나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벗어나 있다는 것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도덕 질서만으로는 지금의 현실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응의 원리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 현실

욥은 하나님의 견고한 도덕 질서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며 그것으로 답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이 옳았고 욥이 세 친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도

우리의 짧은 인생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와 기적을 누리는 진정한 인간의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