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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세이빙 다빈치-낸시 피어시

5. 미의 기준, 기계: 계몽주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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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말 그대로 철학이 주의 깊게 사색하여 말로 표현해 낸 내용을 그려 내려는 시도다."
-한스 로크마커-





존 스튜어트 밀의 위기

과학의 스타들

한마디로, 이해 가능한 자연 질서라는 개념의 출처는 과학적 관찰이 아니라 관찰 이전의 성경적 신학이다. 그것이 애초에 과학 연구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조건이다.

방직기에 바치는 송가

과학을 기술에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의 근원 또한 성경적 세계관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창조세계를 맡아 다스릴 인류의 청지기 지위가 훼손되었는데,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과학을 활용해 그 지위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현대 기술의 창시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의 운명과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소명"에 의거해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과학은 타락이 초래한 수고와 고통을 완화시킨다는 인도주의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과 그 기술적 파생 효과가 종교적 인도주의의 영향을 받는 동안, 예술가들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며 환호했다.

경험주의의 등장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세속주의의 접근 방식이 기독교 세계관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이론가들이 놀랍고 새로운 과학이론을 손에 넣고는 기독교적인 맥락을 제거해 버렸다. 성경에 근거해 경험적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는 감각을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승격시키는 경험주의 철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경험적 방법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모두 신화나 은유로 치부되었다.


리얼리즘은 사건을 객관적 또는 가치중립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고야는 리얼리즘의 초기 대표자였다.

마네의 작품은 예술의 자연주의 흐름에 보다 충실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캐너데이는 "고전주의자들은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요약한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도덕과 관계없다......자연주의는 더없이 일시적인 순간만을 다룬다."고 썼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여주는 예술가


리얼리즘 화가들은 종교를 철저히 인간적인 현상으로 취급했다.
종교는 흥미로운 사회학적 요소이자 진기한 의식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위 그림은 기독교를 시골 지방의 관습에 불과한 감상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성경과 감각 자료

모든 세계관은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 경험주의에 담긴 진리는 창조주가 그분의 창조세계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오감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복음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경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복음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반대신문과 검증이 가능한 공적 진리의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경험적 자료를 존중하는 복음서의 입장에 힘입어 학자들은 신약성경 속 사건들의 역사적 증거를 탐구하는 경험주의 형식의 변증론을 개발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립적인 관점에서 입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세계관이 걸린 문제다. 그렇지만 신약성경 속 사건들에 대한 세속주의적 해석에 대해 역사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해석의 출발점이 되는 세속주의적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경험적 방법론을 내세우는 현대 과학도 성경적 세계관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현대 과학의 실험적 방법도 성경의 창조주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과학 초기의 과학자들은 "연역에 근거한, 논리적으로 확실한 지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관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경험적 증거에 근거한 개연성 있는 지식이라는 과학의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다.


농부와 밴조


기독교 사실주의자들은 간나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대상의 내면적 존엄과 중요성까지 표현하려 했다.


자연에서 하나님 발견하기


기독교 사실주의자들은 일시적인 것에 영원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인상주의자들의 세계관



다빈치 vs 드가

철학자들이 모든 해석을 배제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자, 예술가들은 해석되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현대인이 삶의 일관된 줄거리를 믿지 않게 되면서, 예술가도 그림으로 일관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업을 멈추었다. 그리고 되는대로 요둉치는 삶의 조각을 포착하려 시도했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불협화음 연출



누구도 위하지 않는 예술

예술작품의 타당성이 형식적 요쇼에만 있다는 생각을 '형식주의'라고 한다. 이것은 전통적 예술 개념과 상당 부분 결별한 입자이다.

#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지상주의라고도 불리는, 예술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여기는 사상이나 태도. 19세기 유럽 문화에서 나타난 사상으로, 정치.종교.과학 따위를 예술과 분리하고 오직 예술의 미적 창조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한다.

공공을 위한 예술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부르주아 정신에 영향을 미친 자유주의 신학은 죄와 구원이라는 성경적 개념 대신 물질적. 도덕적 진보라는 자기만족적 교리를 받아들였다.



합리주의자들의 반발



갈릴레이 vs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이 이야기는 흔히 과학과 종교의 갈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올바른 자연철학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리스도인들 끼리 벌인 싸움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이냐, 갈릴레오의 양이냐?
갈리레이의 승리는 곧 자연이 수학적 청사진 위에 세워졌다는 생각의 승리였다.



뉴턴 훔치기

우주는 통합된 코스머스다.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 수학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뉴턴은 신학을 과학 안에 엮어 넣었을 뿐 아니라, 과학을 이용해 신학을 옹호했다. 그는 과학의 '본업'이 기계적 인과관계의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 "기계적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제1원인", 곧 인격적 창조주에게까지 마침내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턴이 볼 때는 그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물인 중력 개념조차도 하나님의 증거였다. 중력은 질량과 전충성(물질이 공간을 매우는 성질) 같은 물질의 고유한 특성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뉴턴은 중력을 하나님이 세상을 직접, 적극적으로 다스리시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시간과공간을 포함한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사실 하나님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절대시간은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속이었다. 절대공간은 "무한부터 무한에 이르는" 하나님의 무소부재였다. 뉴턴 물리학이 본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행 17:28절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지만 결국 계몽주의 이론가들이 손을 썼고, 뉴턴의 새로운 과학도 세속화의 부식 과정을 거쳤다. 볼테르는 뉴턴의 연구 결과를 유럽 대륙에 소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위대한 과학자 뉴턴의 성경적 시각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다. 대신에 그는 뉴턴의 물리학을 끌어다 계몽주의 입장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는 세속화 패턴이다. 뉴턴의 중력 개념이 유물론적으로 해석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우주를 붙드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 물질 안에 내재하는 힘에 불과했다.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은 논리적 범주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의 이론은 결국 그가 반박하려 했던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흡수되었다.

영국에서는 뉴턴 물리학이 우주는 제작자가 필요한 거대한 기계라는 우주상을 만들어 냈고 이 개념이 종교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뉴턴 물리학은 "세계가 물질과 운동으로 이루어진 자충족적 기계라는 결론을 담고 있다고 해석"되어 유물론을 지지하는 용도로 쓰였다.

얄궂게도, 유물론적 세계관은 '뉴턴 세계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뉴턴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세계관인데 말이다. 이 세계관은 우주를 변하지 않는 수학 법칙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로 그렸다. 수학적 모델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 정치, 도덕에도 적용되었다. 너무나 간단해 보였다.자연뿐 아니라 인간 본성을 지배할 수단까지 확보하게 될 것이다.



피카소 합리주의 수업

예술은 이제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형식의 탐구였다.

형식주의자들은 위대한 예술의 힘이 언제나 그 근저에 놓인 기하학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입체주의는 "과학적 시각과 계몽주의 철학, 합리주의 철학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기계

미래주의
기계가 생명체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기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다면, 예술을 읽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문화의 흐름에서 앞서 나가고 각 세대에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수학예술가들

예술을 보편적 시각 언어로 바꾸는 것이었다.
기하학적 형식주의는 개별적인 것을 무시하고 보편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는 합리주의 세계관의 시각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톰 울프의 미술관

기하학적 형식주의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는 합리주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오늘날에는 최고 수준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림이 '그려낸 말(painted words)'이 되어 버린 것이다.



쇤베르크, 계산으로 작곡하다



수학이 되어 버린 음악

음악 배후의 세계관이 음악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합리주의를 떠받드느라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잃어버렸다말해, 원인은 결과를 설명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비인격적 출발점을 가정하는 세계관은 인격적 행위 주체를 설명할 지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런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폄하하고 인간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속적 무오류성의 추구

계몽주의 세계관: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세계관은 '마음의 우상'. 우상은 거짓 신이요, 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다. 우상이 전통적 의미에서 종교적일 필요는 없고 공식 예배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속주의 세계관은 한 사람의 삶에서 전통 종교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피조무 가운데서 어떤 것을 하나님처럼 떠받드는 인간의 성향"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기에 창조주를 부인하면 피조계안의 다른 것에 매달리고 그것을 숭배하기 마련이다. 실생활에서 보자면,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권력, 이익, 쾌락 등 정서적 욕구를 채우 줄 대체물을 찾는다. 생각의 영역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역할을 감당할 대체물로 궁극적 실재, 다른 모든 것의 근원을 찾는다. 세계관은 마음의 우상이다. ( 에스겔 14:3절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세계관 분석의 주요 과제는 그런 우상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것들이 내세우는 거짓 주장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공동체, 사고 형식, 문화는 신이나 신의 대체물에 대한 모종의 궁극적 관심사 또는 궁극적 충성 위에 서 있기 마련이다. .....문화를 분석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들의 집합적 우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현대의 세속주의 우상이 생겨난 시기는 진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시기와 겹친다. 출발점은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종교전쟁의 시기를 낳았고, 종교적 진리를 둘러싼 의견 차이 때문에 기독교인들끼리 말 그대로 서로 피를 흘렸으며 여러나라가 분열했다.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진실로 실재하는 것은 불생불멸의 아토마와 이것이 존재하는 장소로서의 공허뿐이라 하여, 원자설에 입각한 유물론을 제창하였다.), 에피쿠로스 등 고전 문헌이 재발견되었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들 모두 의견이 달랐다. 근대의 여명은 당황스러운 지적 충돌의 시기였다. 당대의 긴박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서로 경쟁하는 진리 주장 중에서 어떤 것이 정말 옳을까?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와 같은 지적 혼란을 해결해줄 전랴을 생각해 냈다. 그들은 상충하는 온갖 주장과 반대 주장보다 더 근본적인 진리의 근원을 모색했다. 그것은 경쟁하는 신학과 철학이 내놓는 어떤 주장보다도 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접근 가능한 진리여야 했다. 이 말은 개인 안에 자리 잡은 진리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무기를 들고 서로 싸우는 정치조직이나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는 교파들, 최고 권위를 내세우며 경쟁하는 고대 문서나 경전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어떤 외적 원천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계몽주의는 각 개인이 스스로 지식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줄 방법을 찾기 원했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둘 다 인간의 지식을 신의 계시가 아닌 별도의 확고한 토대위에 세우려는 시도였다. 계시만큼 확실하고 보편적인 지식의 근원을 찾아 계시를 대신하려 했고 개인의 의식 안에서 무오류성을 찾고자 했다. 두 철학의 차이는 그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뿐이었다.
경험주의자들은 감각을 우상으로 만들었다. 원감각 자료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 된다고 보았다.
합리주의자들은 지식이 이성으로 직접 알 수 있는 것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는 모든 가르침, 모든 전통, 진리라고 받아들인 모든 사실, 성경 같은 모든 계시를 거부하고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었다. 인간의 법과 관습과 전통은 틀리거나 잘못될 수 있는데, 이 모든 문화적 잔재를 벗겨 내고 남는 그 무엇은 틀리거나 잘못될 수 없다는 생각이 형태를 막론한 모든 모더니즘 기획의 핵심이다.
이것은 신적 계시의 대체물로 기능하여 신적 계시가 제공하던 확실성과 보편성을 그대로 제공할 것이다.
베이컨의 경험주의는 '감각의 권위;'에 호소했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지성의 권위'에 호소했다. 그러나 둘의 목표는 동일했다. 신의 계시를 다른 권위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의 대체물을 추구하고 있었다.


신의 대체물

세속주의자는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회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 대체물에 대해서는 진정한 신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회의주의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만 작동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그들은 별로 의심할 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법, 교육, 성, 의료보험 등의 영역에서 세속주의적 견해를 강제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주의적 견해는 결과적으로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세속주의는 형태를 막론하고 환원주의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 세계관은 하나님보다 못한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피조물 중 하나가 모든 실재를 설명하는 범주로 자리 잡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하고 다면적인 세계를 단일 범주로 환원해 버린다.
사람도 상자 속에 쑤셔 박힌다. 이런 식으로 모든 우상은 결국 비인간화를 초래하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통과 소외의 잔해만 남는다.
세속적 우상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보다 나은 것을 내놓는 것이다. 세속적 경험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기독교 경험주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경험주의는 감각계의 가치를 인정하되, 실재를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진, 선, 미, 사랑 같은 보이지 않는 영역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속적 합리주의에 대해서는 기독교 합리주의를 말할 수 있다. 기독교 합리주의는 합리성의 가치를 인정하되, 진리를 유한하고 타락한 인간 이성에서 유래하는 관념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성경에 근거한 세계관은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세속주의 철학이 내놓는 최고의 통찰을 인정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이 피조물 중 하나가 아니라 초월적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계의 어떤 부분도 신격화하지 않기에 창조계의 나머지 부분 또한 거부해야 할 필요가 없다. 창조된 실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뻐한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에 힘입어 모든 환원주의적 기획의 비좁은 한계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경험적, 합리적 같은 좋은 말들을 세속주의 세계관이 독차지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용어 안에 균형 잡힌 성경적 내용을 채워 넣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강제수용소 음악

같은 이유로, 기독교 예술가들은 세속주의 예술이론이 예술 양식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더 풍성하고 인도적인 성경적 시각 안에서 여러 양식적 요소가 모두 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