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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은 .....서로 진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라이벌이 되었다." -자크 바전-
아말의 마법
아름다움, 야수 취급을 받다
예술가는 사색가
예술을 읽는 새로운 방법
기하학을 사랑한 그리스인들
비잔티 시대의 성화
신플라톤주의 이원론의 요소는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 보이티우스, 카파도키아 교부들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사상에 흘러들었다. 우리는 그 영향을 수도원 운동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창조된 모든 실재가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고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잃어버렸다.
비잔티 성화는 예수님의 인성이 아니라 신성을 강조했다. 그분은 전능한 재판장이자 우주의 통치자로 그려졌다. 마리아는 갈릴리 출신의 가난한 농촌 소녀가 아니라 (가톨릭 신학과 동방정교회 신학에 따라) 하늘에 높이 들리신 하나님의 어머니였다.
비잔티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반대로, 일체의 개인적 시각을 제거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과 공식을 따랐다. 성화는 예배자를 초월적인 영의 영역으로 이끄는 '창문'으로 떠받들어졌다.
최초의 예수 탄생 장면
너희가 신이 되리라
세상은 책이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자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돌로 만든 조각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은 영적이다
계몽된 지배
현대 과학의 발흥으로 시작된 계몽주의의 주된 은유는 자연이 거대한 기계라는 것이었다. 그 기계가 작동하는 법칙을 배우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미술은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확신에 찬 태도를 표현한다.
낭만주의의 제안
계몽주의 세계관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자연이 자연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라면, 여기에는 모든 것이 확고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정론적 생각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도, 창의성도, 도덕적 책임도 없다. 자연은 차갑고 죽은 것으로 보였다. 낭만주의자들은 기계의 은유를 생명체의 은유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정통 기독교 대신 유사-범신론 철학을 받아들였는데, 이철학에서 하나님은 자연의 초월적 창조주가 아니라 자연 안에 내재하는 영적 임재였다.
세속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
예술이 진리의 개념과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다? 역사가들이 '근대(modern)'라고 말하는 시기는 대체로 계옴주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많은 사상가들은 과학혁명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과학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없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제 과학은 세상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배타적인 세계관, 곧 과학주의(scientism)또는 실증주의(positivism)로 격상되었다.
사실/가치의 분리의 언어로 말하자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경험적 사실의 영역에 대해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철학적 자연주의 또는 유물론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실재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그에 반해 낭만주의자들은 가치의 영역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철학적 관념론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실재가 마음 또는 ㅈㅇ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관념론(idealism)이라는 용어는 이상(ideals)을 품는다는 통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궁극적 원인이 되는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곧 관념(ideas)의 영역이라는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유무론은 모든 것을 '물건 상자'에 넣으려 하고, 관념론은 모든 것을 '마음 상자'에 넣으려 한다.
서구 사상의 분열
낭만주의- 마음 상자
---------------------------------------------------------------------------
계몽주의- 물건 상자
기계에서 유령 쫒아내기
진리 분열에서 중심축이 되는 사상가는 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다. 그의 철학은 계몽주의를 지지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은 경험과학이 연구하는 자연계, 곧 '물건 상자' 너머에 있는 것은 알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칸트는 과학을 제외한 모든 현태의 지식을 잘라냄으로써 사실상 서구 사상의 역사 전체를 묵살해 버렸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을 '기계 속의 유령'으로 쪼개 버린, 당시에 친숙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잘 맞아떨어졌다. 유물론이나 자연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인간을 폐쇄된 인과관계에 갇힌 복잡한 물리전 매커니즘에 불과한 존재로 축소했다. 물리적 뇌와 별도로 존재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는 뜻이었다. 인간의 본질은 로봇이나 자동인형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었다.
"유령 없는 기계일 뿐이다." 유령이 없다면 자유는 망상일 뿐이다. 의식조차도 실재가 아니다.
이 이론의 치명적인 결함은 모든 세계관의 출발점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관념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기모순적이라는 데 있다.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칸트의 이원론
자유- 알 수 없는 이상들
----------------------------------------------------------------------------------------------------------------------
자연- 알 수 있는 사실들
칸트의 이분법이 끼친 영향의 구체적인 사례로, 과학적 유물론의 주장이 성경과 모순될 때마다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성경해석을 조정하고 적응해야지 그 반대는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자연계에 대한 진술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기독교는 도덕을 장려하기 위해 주일학교용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물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그 이야기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이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유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자연계를 과학에 넘겨주고" 신학을 도덕의 치장물 정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칸트의 일층과 이층의 분열은 영혼의 자유를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주권적 자아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구조를 부여하셨다는 전통적인 가르침과 달리, 칸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구조를 부여한 주체가 인간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자연의 입법자"이고, 이것은 철학적 관념론, 곧 마음 상자다.
낭만주의자들이 볼 때, 개별적 자아는 어떤 식으로든 초월적 자아의 일부다. 물질적 우주 자체가 심적. 정신적 실체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후 절대정신의 관념은 신비주의적 모호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철학적 관념론은 실존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실존주의에서는 초월적 자아가 사라져 인격성을 잃어버린 우주에 개별적 자아만이 홀로 남았다.
인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칸트가 말한 '처럼의 영역'뿐이다. 인간은 도덕적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인생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실존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자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진화의 흐름에 푹 잠겨 있다.
안정된 것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철학의 위층 흐름이 현대에 물려준 유산은 자아가 자기우주의 창조자라는 확신이다. 포스트모던 자아는 세계를 살피고 자신이 선택한 정신적. 도덕적 의미를 자유롭게 부고한다.
철학의 분열과 선
칸트 이후의 철학은 계몽주의 후계자 대 낭만주의 후계자, 이렇게 대립하는 두 흐름으로갈라졌다. 20세기 철학에서는 이 두 흐름을 '분석적 전통'과 '대륙적 전통'이라고 불렀다.
20세기 철학
대륙적 전통- 남만주의 후계자
---------------------------------------------------------------------------------------------------------------------
분석적 전통- 계몽주의 후계자
각 전통은 칸트의 자연/자유 이원론의 한쪽씩을 맡아 확장시켰다.
* 분석철학- 과학과 일상적 언어의 여러 개념이나 명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철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현대 영미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주로 기호나 언어의 분석을 통하여 인식의 참과 거짓 또는 그 의미를 비판하는 학문이다.
이에반해, 대륙 사상가들은 낭만주의, 곧 칸트의 위층을 옹호한다. 대륙적 사상은 신학, 예술사, 문학비평, 문화연구, 정치이론 등의 인문학을 사실상 점령했다. 삶의 의미, 선과 악, 압제와 정의,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 등 '큰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원론은 서구의 사상과 문화에서 주요 분기점이 되었다. 세속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이 나온 것이다.
세계관은 같은 길로 움직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행형의 전통을 형성하고, 계몽주의 지도나 낭만주의 지도 가운데 하나를 따라간다. 개별적인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이 어떤 혈통에 속하고 어떤 공퉁 주제를 공유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공격받는 예술
산문이 사실과 계몽된 사상의 수단이 되었고, 시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강등되었다.
누가 진리를 보유하는가
원자는 객관적 사실의 영역에 속했고, 아름다움은 주관적 가치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사람들은 자연과학이 공적으로 검증 가능한 진리를 제공하고, 예술은 사적 취향의 문제를 다룬다고 여긴다." 공적 진리 대 사적 취향이다. 사실/가치의 분열이 목청을 높이면서 예술이 한때 누렸던 지위와 존경은 약화되었다.
예술가들의 생존 전략
근대 예술의 두 흐름
관념주의- 과학적 세계관에 저항
---------------------------------------------------------------------------------
자연주의- 과학적 세계관을 묘사
20세기의 예술
표현주의- 주관적 감정의 표현
-------------------------------------------------------------------------
형식주의- 객관적 형식의 분석
그리스도인의 자유
과학이 진리의 자리를 독점하게 되면 "전통적인 종교의 진술은 전통적인 시의 진술보다 더한 허구와 환상이 된다."
세계관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리스도인은 예술의 미적 특성을 향유할 뿐 아니라 예술을 이끄는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도구를 얻게 된다. 성경의 진리는 매우 풍부하고 다차원적이기 대문에 그에 힘입어 모든 세계관에서 참된 요소를 가려낼 수 있고, 동시에 각 세계관의 오류를 비판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기독교 안에서 지적. 예술적으로 가장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술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인 혀애로 표현하여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다 분명히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말의 마법
아름다움, 야수 취급을 받다
예술가는 사색가
예술을 읽는 새로운 방법
기하학을 사랑한 그리스인들
사람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고전 예술은 고전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비잔티 시대의 성화
비잔티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 사상과 동양의 신비주의를 혼합한 철학이다. 그 결과, 물질계를 죽음과 부패, 악과 타락의 영역으로 보는 과격한 이원론이 생겨났다. 지혜로 가는 길은 오감으로 알 수 있는 물질계에서 물러나 이성이라는 내적 눈으로 이상과 보편의 영역을 숙고하는 것이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영적 영여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신플라톤주의 이원론의 요소는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 보이티우스, 카파도키아 교부들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사상에 흘러들었다. 우리는 그 영향을 수도원 운동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창조된 모든 실재가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고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잃어버렸다.
비잔티 성화는 예수님의 인성이 아니라 신성을 강조했다. 그분은 전능한 재판장이자 우주의 통치자로 그려졌다. 마리아는 갈릴리 출신의 가난한 농촌 소녀가 아니라 (가톨릭 신학과 동방정교회 신학에 따라) 하늘에 높이 들리신 하나님의 어머니였다.
비잔티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반대로, 일체의 개인적 시각을 제거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과 공식을 따랐다. 성화는 예배자를 초월적인 영의 영역으로 이끄는 '창문'으로 떠받들어졌다.
최초의 예수 탄생 장면
너희가 신이 되리라
레오나르도의 작품 <비트루비우스(인체의 이상적인 비례를 계산했던 고대 로마 건축가)의 인간>은 인간이 영혼과 물질의 두 영역을 통합시키는 소우주라는 신플라톤주의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은 책이다
종교개혁은 이원론을 극복하고 통합된 세계관을 회복할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는 '소명(vocation)'이라는 개신교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이 정직하게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받은 부름, 곧 문화명령(땅을 경작하라는 창세기의 명령)을 성취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종교개혁에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은 흔히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는 보통 사람들을 보여준다.
교부 시대 이래로 신학자들은 계시의 '두 책'이 있다고 말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성경)과 하나님의 세계의 책(창조세계)이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자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돌로 만든 조각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은 영적이다
바로크 시대의 가톨릭 예술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물질계 안에서, 물질계를 통해 내재한다는 생각을 전달하려 했다.
계몽된 지배
현대 과학의 발흥으로 시작된 계몽주의의 주된 은유는 자연이 거대한 기계라는 것이었다. 그 기계가 작동하는 법칙을 배우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미술은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확신에 찬 태도를 표현한다.
낭만주의의 제안
계몽주의 세계관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자연이 자연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라면, 여기에는 모든 것이 확고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정론적 생각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도, 창의성도, 도덕적 책임도 없다. 자연은 차갑고 죽은 것으로 보였다. 낭만주의자들은 기계의 은유를 생명체의 은유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정통 기독교 대신 유사-범신론 철학을 받아들였는데, 이철학에서 하나님은 자연의 초월적 창조주가 아니라 자연 안에 내재하는 영적 임재였다.
세속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
예술이 진리의 개념과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다? 역사가들이 '근대(modern)'라고 말하는 시기는 대체로 계옴주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많은 사상가들은 과학혁명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과학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없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제 과학은 세상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배타적인 세계관, 곧 과학주의(scientism)또는 실증주의(positivism)로 격상되었다.
사실/가치의 분리의 언어로 말하자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경험적 사실의 영역에 대해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철학적 자연주의 또는 유물론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실재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그에 반해 낭만주의자들은 가치의 영역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철학적 관념론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실재가 마음 또는 ㅈㅇ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관념론(idealism)이라는 용어는 이상(ideals)을 품는다는 통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궁극적 원인이 되는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곧 관념(ideas)의 영역이라는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유무론은 모든 것을 '물건 상자'에 넣으려 하고, 관념론은 모든 것을 '마음 상자'에 넣으려 한다.
서구 사상의 분열
낭만주의- 마음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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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물건 상자
기계에서 유령 쫒아내기
진리 분열에서 중심축이 되는 사상가는 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다. 그의 철학은 계몽주의를 지지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은 경험과학이 연구하는 자연계, 곧 '물건 상자' 너머에 있는 것은 알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칸트는 과학을 제외한 모든 현태의 지식을 잘라냄으로써 사실상 서구 사상의 역사 전체를 묵살해 버렸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을 '기계 속의 유령'으로 쪼개 버린, 당시에 친숙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잘 맞아떨어졌다. 유물론이나 자연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인간을 폐쇄된 인과관계에 갇힌 복잡한 물리전 매커니즘에 불과한 존재로 축소했다. 물리적 뇌와 별도로 존재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는 뜻이었다. 인간의 본질은 로봇이나 자동인형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었다.
"유령 없는 기계일 뿐이다." 유령이 없다면 자유는 망상일 뿐이다. 의식조차도 실재가 아니다.
이 이론의 치명적인 결함은 모든 세계관의 출발점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관념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기모순적이라는 데 있다.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칸트의 이원론
자유- 알 수 없는 이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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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알 수 있는 사실들
칸트의 이분법이 끼친 영향의 구체적인 사례로, 과학적 유물론의 주장이 성경과 모순될 때마다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성경해석을 조정하고 적응해야지 그 반대는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자연계에 대한 진술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기독교는 도덕을 장려하기 위해 주일학교용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물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그 이야기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이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유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자연계를 과학에 넘겨주고" 신학을 도덕의 치장물 정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칸트의 일층과 이층의 분열은 영혼의 자유를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주권적 자아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구조를 부여하셨다는 전통적인 가르침과 달리, 칸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구조를 부여한 주체가 인간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자연의 입법자"이고, 이것은 철학적 관념론, 곧 마음 상자다.
낭만주의자들이 볼 때, 개별적 자아는 어떤 식으로든 초월적 자아의 일부다. 물질적 우주 자체가 심적. 정신적 실체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후 절대정신의 관념은 신비주의적 모호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철학적 관념론은 실존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실존주의에서는 초월적 자아가 사라져 인격성을 잃어버린 우주에 개별적 자아만이 홀로 남았다.
인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칸트가 말한 '처럼의 영역'뿐이다. 인간은 도덕적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인생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실존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자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진화의 흐름에 푹 잠겨 있다.
안정된 것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철학의 위층 흐름이 현대에 물려준 유산은 자아가 자기우주의 창조자라는 확신이다. 포스트모던 자아는 세계를 살피고 자신이 선택한 정신적. 도덕적 의미를 자유롭게 부고한다.
철학의 분열과 선
칸트 이후의 철학은 계몽주의 후계자 대 낭만주의 후계자, 이렇게 대립하는 두 흐름으로갈라졌다. 20세기 철학에서는 이 두 흐름을 '분석적 전통'과 '대륙적 전통'이라고 불렀다.
20세기 철학
대륙적 전통- 남만주의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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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적 전통- 계몽주의 후계자
각 전통은 칸트의 자연/자유 이원론의 한쪽씩을 맡아 확장시켰다.
* 분석철학- 과학과 일상적 언어의 여러 개념이나 명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철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현대 영미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주로 기호나 언어의 분석을 통하여 인식의 참과 거짓 또는 그 의미를 비판하는 학문이다.
이에반해, 대륙 사상가들은 낭만주의, 곧 칸트의 위층을 옹호한다. 대륙적 사상은 신학, 예술사, 문학비평, 문화연구, 정치이론 등의 인문학을 사실상 점령했다. 삶의 의미, 선과 악, 압제와 정의,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 등 '큰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원론은 서구의 사상과 문화에서 주요 분기점이 되었다. 세속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이 나온 것이다.
세계관은 같은 길로 움직이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행형의 전통을 형성하고, 계몽주의 지도나 낭만주의 지도 가운데 하나를 따라간다. 개별적인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이 어떤 혈통에 속하고 어떤 공퉁 주제를 공유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공격받는 예술
산문이 사실과 계몽된 사상의 수단이 되었고, 시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강등되었다.
누가 진리를 보유하는가
원자는 객관적 사실의 영역에 속했고, 아름다움은 주관적 가치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사람들은 자연과학이 공적으로 검증 가능한 진리를 제공하고, 예술은 사적 취향의 문제를 다룬다고 여긴다." 공적 진리 대 사적 취향이다. 사실/가치의 분열이 목청을 높이면서 예술이 한때 누렸던 지위와 존경은 약화되었다.
예술가들의 생존 전략
근대 예술의 두 흐름
관념주의- 과학적 세계관에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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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과학적 세계관을 묘사
20세기의 예술
표현주의- 주관적 감정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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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객관적 형식의 분석
그리스도인의 자유
과학이 진리의 자리를 독점하게 되면 "전통적인 종교의 진술은 전통적인 시의 진술보다 더한 허구와 환상이 된다."
세계관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리스도인은 예술의 미적 특성을 향유할 뿐 아니라 예술을 이끄는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도구를 얻게 된다. 성경의 진리는 매우 풍부하고 다차원적이기 대문에 그에 힘입어 모든 세계관에서 참된 요소를 가려낼 수 있고, 동시에 각 세계관의 오류를 비판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기독교 안에서 지적. 예술적으로 가장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술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인 혀애로 표현하여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다 분명히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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