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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나 여자나 일층뿐 아니라 맨 위층도 있거든. 맨 위층은 거부하면서 일층만 가질 수는 없어."-조지 버나드 쇼-
네 이웃을 미워하라
일관성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속화된 세속주의의 윤리적 표현방시글 파악해야 한다. 죽음과 절망 쪽에 힘을 보태는 이들에 맞서서
"네 이웃을 사랑함"이 옳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당장의 사건들은 해수면에 나타나는 파도처럼 표면적인 결과다. 그것은 지각판과 같은 근저의 세계관이 움직인 결과로 생겨난다. 세계관 차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은 낙태 같은 사회적 해악을 성토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가혹하고 성난 사람,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넘어서서, 성경의 지혜가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전략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세속적 세계관을 드러내야 한다.
이원론 살인
자유주의 인간관
인격 - 자율적 자아(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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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생화학적 기계(모더니즘)
인간성의 개념이 분열 되었다. 아래층에서 인간의 몸은 기구나 장치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메커니즘으로 축소되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생명과 DNA를 가지고 무제한의 실험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위층에서는 포스트모던한 자아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일체의 도덕적 제약을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성토하면 거부한다.
인간의 본성 자체를 규베 없이 개조할 수 있는 수문이 활짝 열렸다.
기계 속의 유령
기독교는 목적론적 자연관을 낳았다. 인간의 이상적 상태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 도덕법은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 주는 지침이고, 하나님이 원래 인간에게 바라셨던 온전한 사람이 되는 법에 관한 설명서다. 그 설명서의 가장 중요한 출처는 물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또 다른 출처는 그분이 자연 속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가리키는 표적, 타가한 세상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녀의 생물학적 대응성은 하나님이 "매우 좋다",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선언하신 본래 창조의 일부이기에 도덕의 기준이 된다. 도덕규범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 본성을 창조하신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발흥과 더불어 많은 서구인이 기계론적 자연 모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계론적 모델에 근거한 자연관은 성경적 자연관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었다. 기계론적 자연관의 초기 주창자들은 로버트 보일과 아이작 뉴턴 등 대체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뉴턴 과학의 전체 형식을 받아들이는 한, 과학적 가설로 외적 창조주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르네 데카르트 철학에 이르러서는 기계론적 접근법이 정신/몸의 과격한 이분법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의 몸을 일종의 로봇 또는 태엽 인형으로 보았다. 그는 정신을 로봇 몸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자유롭고 자기 충족적인 의식으로 정의했는데,
"이 기계와 연결된 이성적 영혼"이다.
이원론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각자에게 각자의 관할 구역을. 과학자에게는 물질과 그 기계론적 운동법칙을,
신학자에게는 정신적 실체와 인간의 영혼을."
데카르트의 이원론에는 불손하게도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은 "쪼개졌다."
이층집 이미지로 설명해 보면, 아래층은 맹목적이고 기계론적인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몸이고 위층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다.
데카르트는 "우리의 총체적 경험의 세계를 두 개의 바구로 분리시켰다."
자연에 걸려 있던 마법 벗기기
서구 사상은 우주(기계)는 더 이상 그것을 창조할 설계자나 태엽을 감을 천상의 기계공이
필요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우주가 지시를 받지 않는 자동적인 물리력으로 작동하는 자기창조 발전기와 같다는 그림을 내놓았다.
자기진화 우주의 개념은 초월적 창조주의 필요성을 몽땅 제거하는 역할을 했다.
자연은 "물질이 확장된 기계론적 체계가 되었으며
그 안에는 어떠한 종교적. 도덕적 중요성도 없다."
목적과 설계 같은 것은 자연의 범주에서 제외 되었고,
인간 정신에는 심적 관념을 설명하는 개념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지 않는 자연은 인간이 자신의 뜻을 강요해도 무방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영역이 되었다.
웨스트의 설명을 옮기자면, 자연이 "하나님의 뜻의 발현"이라고 여겨졌을 때 지식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분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제시하는 자연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식의 유일한 목표는 "자연을 예측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사실/가치의 이원론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은 가치중립적인 사실의 영역이 되어 인간들이 선택하는 가치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우리가 성인이 되었다. 신은 이제 위층으로 쫒아 버릴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세상을 굴릴 수 있고 외부의 개입 없이 우리에게 유리한 대로 세상을 분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가치 중립적인 자연관의 대상에는 인간의 몸도 포함되었다. 몸은 자율적 자아의 선택에 내맡겨진 원재료에 불과해졌다. 자연과 몸 모두 "인간의 지극히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는, 본질적으로 도덕과 무관한 매커니즘"이 되었다.
'자유주의' 철학자에 따르면, "각 세대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전까지 자연에 의해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던 삶의 차원들"에 초점을 맞추고 실제로 그것들이 "인간의 의지와 재구성에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다시 말하면, 이전 세대는 하나님께 받은 목적을 표현해 주는 고정되고 보편적인 인간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성 간의 결혼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진 삶의 방식이었다. 그에 반해 자유주의는 고정되거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인간은 우연히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이자, 우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맹목적인 진화력의 산물이다. 결혼은 진화의 역사상 어떤 시점에서 적응력을 발휘하여 만들어 낸 사회적 행동이지만 인간 본성에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을 자유롭게 재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재구성"에 무제한적으로 열려 있다.
인간의 몸은 제어와 조직이 가능한 일종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몸은 더 이상 인간의 인격제를 이루는 통합적인 일부로 인식되지 않고 생물학과 화학의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인격 이하'의 것으로, 자아의 욕망에 이바지하는 소유물로 여겨진다.
인간을 분열시키다
'인간'과 '인격체'로 구분
인격성 이론
인격- '인격체'는 자유와 도덕적 존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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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인간'은 처분 가능한 기계다
인격성의 개념이 생물학과 분리되면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하여 비인도적 행위와 억압의 문이 열리게 된다. 생명의 어떤 단계에 있든지, 누구라도 '비인격체'의 지위로 떨어져, 살 권리가 없는 존재로 취급될 수 있다.
낙태 찬성은 과학에 어긋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과학에 어긋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낙태 지지자들은 과학적 차원에서 논증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배아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논거를 인격성이라는위층 개념으로 옮겨 놓았다. 그곳에서 인격성을 규정하는 일은 철저히 그들의 개인적 선택에 달려 있다. 그들의 견해를 법제화 하는 것은 그들의 사적 가치를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강제하는 것이다.
성경과 몸
성경에 따르면, 물질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궁극적으로 구속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가 있다. 초대교회 당시 이것은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고대 이교 문화에는 플라톤 주의(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철학을 계승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하며, 개별적인 감각적 사물로부터 초월. 분리하여 존재하는 이데아의 존재를 세계의 설명 근거로 삼는 입장을 말한다. 플라톤이 중기 대화편에서 사용한 영혼의 육체로부터의 분리. 원형으로서의 이데아와 그 모사로서의 현상세계의 구별과 같은 일련의 설명 방식도 포함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나 영지주의처럼 세상을 부정하는 철학이 퍼져 있었다. 이런 이원론 철학들이 말하는 구원은 몸이라는 감옥에서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문화적 상황에서 초대교회가 내세운 성육신, 곧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다(요 8:14)는 주장은 놀라운 개념이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몸으로 부활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르침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은 이것을 통째로 부정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차원의 영적 세계에서 온 '아바타'로, 물리적 세계에 잠시 들어와 깨달음을 전해준 뒤 더 높은 존재 상태로 돌아갔다고 가르쳤다. N. T. 라이트는 그들이 "부활의 언어를 사적 영성과 이원론적 우주론으로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 새로운 부활의 몸을 받으신 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창조의 시작이며,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서는 모든 불의와 부패가 일소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원론을 거부하고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불의에 맞설 힘을 얻었다.
교회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몸의 부활'을 통해 그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사도신경을 통해 담대하게 선언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물질세계 바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와 함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첫 번째 창조가 실수였다는 듯이 시공간에 자리 잡은 물리적 세계를 폐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죽음의 순간에 일시적으로 몸과 영의 분리를 겪지만,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마지막 원수"(고전 15:26)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나님이 통합된 상태로 있기 원하시는 것을 죽음이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새 창조의 세계에서는 몸과 영이 재 통합될 것이다. 영원히! 몸의 부활 교리는 물리적 세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이 하나님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맞서 인간의 몸을 귀하게 보는 이들은 뜻밖에도 정통 그리스도인들이다.
모든 사회적 관행의 밑바닥에는 세상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특정한 가정, 곧 세계관이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가 어떤 관행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정당화하는 세계관도 덩달아 흡수하게 된다. 따라서 낙태는 개인이 선택하는 사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문제의 핵심은 어떤 세계관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세계관을 진리로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의 인권과 존엄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되는 것이다.
테리를 겨냥하다
최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몸의 모든 기관계가 작동을 중지하는 상태라면, 의사의 개입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의미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인격성 이론은 적극적으로 생명을 끊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인격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도덕적으로 의미가 없다. 개인은 선택을 내리고 자의식을 발휘하는 능력 같은 추가적인 기준을 충족하여 인격성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은 비인격체로 강등된다. 그리고 많은 윤리학자들이 비인격체는 연구와 장기 적출 등 공리적 목적에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배아 농장
인간 배아는 이미 시장성 있는 재화 취급을 받고 있다. 이층집 패러다임에서 인간 배아는 인격체가 아니라 생물학적 개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주는 편익이 비용을 초과한다는 공리적 계산이 나올 경우, 인간 배아를 파괴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이층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나면, 배아가 모든 발달 단계에서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사실과 인격성이 떼려야 뗄 수 없이 이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성인을 죽이는 일과 도덕적으로 유사하다.
더욱이, 전형적인 배아 연구에서는 인간 생명을 파괴할 목적으로 배아를 만들어 낸다. 사람을 어떤 외재적 목적의 수단으로로써만 보아서는 안 되고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것은 윤리학의 근본원리다.
이렇듯 인명을 공리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견해는 사회 전체를 거칠고 잔인한 곳으로 변모시킨다.
다윈슈타인
아이러니하게도, 배아 연구는 꼭 필요한 연구가 아니다.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도덕적 문제도 없으며 지금까지 탁월한 결과를 내놓았다.
'초인간주의'- 형질전환(문자적으로 "종을 뛰어넘어") 기술이 인간 역량을 향상시키고 탈인류를 만들어 낼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하는 주의.
"인격체는 꼭 인간일 필요가 없고, 모든 인간이 다 인격체인 것도 아니다." 휴스의 이 말은 인격성의 개념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모호한지 잘 드러내 준다.
배아학자 브라이언 굿윈에 따르면, 이 모든 미래의 시나리오의 배후에는 "종 같은 것은 없다"는 다윈주의적 가정이 깔려 있다. 그 결과 "생명은 부분들의 집합", 곧 미래의 진보에 대한 일부 유전학자들의 생각에 맞게 "이리저리 깔아 끼울 수 있는 원자재가 된다."
만일 생명이 맹목적이고 물질적인 힘에 의해 우연히 생겨났다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주제는 없을 것이다. 유기체를 마음대로 섞고 짝지을 수 있는 유전자 및 기타 예비 부품들이 임의로 모인 것에 불과하다.
인본주의가 만드는 지옥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 수준이 아니라 해당 사회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 수준이 아니라 해당 사회를 지배하는 세계관이다. 그리고 인간 생명에는 고유한 가치나 존엄성이 없다고 말하는 세계관은 아무리 진보된 도구와 장비를 갖추었다 해도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다.
보편적 인권의 근거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누군가가 유토피아의 창조를 위해 인간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도덕적으로 끔찍한 결과가 나타난다. 나치즘과 공산주의 같은 20세기 전체주의(개인의 모든 활동은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 및 그 체제.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기 때문에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 생활을 간섭.통제해야 하는데,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이 대표적이다.) 체제가 그 증거다. 유토피아주의와 권력이 만나면 죽음의 수용소로 이어진다.
공영방송이 감당할 수 없는 것
훅업과 우울증
성격적 세계관은 목적론적이다. 우리 몸의 생물학적 구조는 남녀가 언약을 맺어 서로 사랑하고 새 생명을 가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다. 성경적 도덕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몸으로 하는 일과 감정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가 없다.
* 훅업 문화-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유행하고 있는 새로운 성풍조. 연인이 아닌 섹스파트너와 하룻밥의 성관계 후에는 다시 만남을 갖기는커녕 대화하는 일도 없다는 게 특징이다.
훅업 문화
인격적- 심리적. 감정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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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성관계
훅업 문화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는 교훈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맞지 않는 세계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경험하는 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세속주의의 견해와 맞지 않는다.비그리스도인은 세속주의 세계관과 모순되는 일들을 실생활에서 항상 경험한다. 그 모순은 세속주의 세계관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어른들이 방조할 때
성관계는 온전한 자아를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육체적 긴장 해소와 오락의 도구로 취급된다.
포모섹슈얼 소외
오늘날의 최첨단 주장은 젠더(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을 의미하는 문화적 성을 gender라 하여 신체 구조에 기반한 성을 말하는 sex와 구분해서 쓴다.) 자체가 사회적 구성물이고, 따라서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특정한 젠더를 타고나며 그것을 바꿀 수없다는 생각은 너무나 '모더니즘적'이다. 사회는 원하기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젠더를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견해로 옮겨 가고 있다. 그것을 포모섹슈얼 견해라고 부른다.
젠더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조작 가능하고 몸의 구조와는 완전히 분리된 포스트모던한 위층 개념이 되었다.
포모섹슈얼 소외
젠더- 심리적 정체성과 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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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물리적 정체성과 해부학적 구조
사람의 성이 해부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에게 할당된 것으로 보는 시각에 주의하라. 해부학적 신체 구조는 성별을 결정함에 있어 무의미하며 적절하지도 않다고 여기는 세속적 자유주의 세계관을 법이 나서서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다.
몸이 중요하다
이것은 신체를 철저히 무시하는 견해다. 일이층 이분법은 사람을 그의 몸으로부터 소외시켜 해부학적 신체 구조에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존엄이나 중요성도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몸은 정말 중요하다. 진정한 성경적 견해는 온전한 인간의 한 요소인 우리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한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이 우리 몸을 모태에서 " 짜 맞추셨다"(13절 새번역)고 노래한다.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감사하며 누리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심리적. 성적 정체성을 존중한다.
성경은 신체적 연합을 온전한 인격체간의 모든 차원에서의 연합으로 놀랄 만큼 높이 평가하고 있다(마 19:6). 가장 깊은 차원의 인격적 친밀함을 표현하는것이다. 성관계를 그 연합과 떼어 내어 분리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간의 관계 안에서, 무엇보다 부부관계의 친밀한 성적-감정적-영적 연합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누리기 원하시는 친밀한 관계의 은유로 쓰인다. 결혼의 은유는 우리의 성적 본성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과 신실함을 선포하는 '언어'를 담고 있음을 말해 준다.
형이상학적으로 길을 잃다
성경적 용어를 써서 말하면, 사람은 여러 방법으로 길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없을 때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길을 잃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비성경적 세계관에 따라 살 때 형이상학적으로 길을 잃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주의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인간 본성에 대한 세속적 자유주의 견해가 그들의 실제 모습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야 한다. 실제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은 개인과 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몸을 멸시하고 자신의 해부학적 구조를 거부하라고 부추기는 포모섹슈얼 사회에 붙들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 사안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불쾌감을 느끼거나 '소중한 신념'이 위협을 받아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생각에 갇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움직이는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한다(고후 5:14).
교회 안에 소외된 젊은이들
복음주의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적 영역에서는 젊은이들과 멀어져 버렸다.
도덕적 사안이 정치적 논쟁거리로 바뀌는 상황에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신물이 나서 환멸에 사로 잡힌 것이다.
교회는 주변 사회를 설득하기에 앞서, 교회 내의 젊은이들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규칙만이 아니라 이유도 필요하다. 교회는 사회참여와 정치참여의 전략을 다시 생각하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공적 논쟁을 주도하는 세속적 세계관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성경적 도덕에 대한 세계관적인 근거를 표현하는법을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삶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뒷받침해야 한다.
진리의 분열과 인간의 파편화.
세계화된 세속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갈래의 길이 어떻게 뻗어 왓는지를 짚어 보고 그동안의 이정표를 읽어 내어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 낸 주요 세계관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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