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 서적/구약에서찿은복음-마틴로이드존스

20장 신기하고 놀라운 복음- 마틴 로이드존스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_예레미야 30장 18, 19절


신구약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입니다. 다만 구약에서는 그분의 자비하심이 씨눈처럼 초기 단계에 있었다면, 신약에서는 완전히 만발한 완숙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렘 30:18)

복음과 복음이 제시하는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구원 계획에서 인간이 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시고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때에야 비로소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한 이야기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법을 말해주기 위한 교과서가 아닙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계시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이미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셔야 하고 또한 기꺼이 주실 용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셨고, 그에 대한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현재 우리가 이렇게 된 것, 그리고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을 발견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서 시작하지 않고, 인간과 함께 시작해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성격이나 작용 양식에서 복음이 본질적으로 초자연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의 기적입니다.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렘 30:18).

성경에 따르면 구원은 크고 광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복음이라고 말하고 나타내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위대함과 범위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신약 기자들에 따르면, 복음은 거듭남이나 중생과 같은 용어가 아닌 다른 어느 용어로도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우리를 위해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철저히 완전하게 변화시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롬 11:33)

복음은 항상 "좋은 소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모든 좋은 소식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저주를 선포하시며, 진노와 형벌도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기쁨에 가득 차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게 만드는 것을 진술하고 계십니다.

우선 복음이 직면하고 있는 과업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위대한 능력과 기능을 오직 육적인 만족과 기쁨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인간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이 능력들이 이제는 인간의 수치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교제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인간을 만들고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점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죄가 영혼을 파멸시켰습니다. 성이 돌무더기로 변했습니다. 원수가 우리를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기다리고 있는, 복음이 직면하고 있는 과업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그런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타락했으며, 파괴되고 멸망하여, 돌무더기로 변했습니다.

여기는 우리서 그것이 복음의 과업이며, 오직 복음만이 할 수 있는 과업이라는 두 번째 원리를 보게 됩니다.
죄의 세력과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이 과거에 범한 죄에 대한 죄책과 오염 문제부터 직면하십시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그것은 오직 복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과업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그 일을 어떻게 해내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렘 30:18)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셔서 마음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 불가능한 일을 행하겠다고 제안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일을 실제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깊은 환난과 재앙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현재 얼마나 절망적인 궁지에 빠져 있는지 깨닫고 좌절과 무력과 비참함을 느끼고 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 예정인지 선포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그분의 때에 친히 행동하십니다. 우리에게 이적을 행하게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과 기쁨을 약속합니다. 우리가 불행하여 절망에 빠져 있는 바로 그때, 이 놀랍고 신기한 말씀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가장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과거의 쓰레기와 폐허를 말끔히 치워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문제입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윌리엄 쿠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새찬송가 258장-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꼐서 갈보리 언덕에서 돌아가심으로 그 모든 폐허와 파편을 말끔히 치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책을 담당하고 그것을 없애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옛 기초가 다시 드러났습니다. 주께서 그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워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아무리 깨끗해도 공터는 성읍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십니다!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렘 30:1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서 천국에 올라가셨습니다. 천국에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며 새롭게 창조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새 출발과 새 생활을 하게 해주십니다. 새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옛 땅에 다시 건축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성이 그 옛 땅에 있습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이지만 새 예루살렘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우리에게 새로운 소원과 관심사, 새로운 소망,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성전과 새로운 제단이 있는 새 본성과 새 생명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피조물, 죄로 얼룩지고 하나님에게서 소외된 우리 같은 피조물이 하나님과 다시 교제하고 그렇게 해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하다니, 이보다 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의 기적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확신시켜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보고 미소 지으시며 우리를 축복하시고 심지어 우리안에 거하시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성도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새사람입니다. 터는 같습니다. 그러나 성읍은 새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나의 옛 원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는 아직 거기 있으며 나를 다시 패배시키려고 애쓸 것입니다. 나는 그 원수가 무섭습니다." 맞습니다. 원수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정복자 이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전에는 우리 혼자 원수와 싸웠습니다. 우리는 매우 약했기 때문에 원수에게 정복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원수를 정복한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강건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힘이자 의지할 분입니다. 그분은 두려워 떨지 않으시며 우리의 약한 팔을 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절대 우리를 혼자 내버려두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전에 패배한 바로 그 장소에서 이제는 승리하고 이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축복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여건에 있든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겠다고 베푸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