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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소명-오스 기니스

3. 나는 누구인가?/소명(The Call)-오스 기니스(Os Gui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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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누구인가?

/소명(The Call)-오스 기니스(Os Guinness)


'책임성'


나는 누구인가?

소명('calling' 또는 'vocation')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정체성의 기반과 인간됨 자체를 이해하려는 현대인의 추구와 연관되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 중요하다.

인간의 개별성을 일반적인 용어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다양한 형태의 '속박된 존재'(constrained to be)라 정리할 수 있다. 


'존재로의 용기'(the courage to be)- "인간이 스스로의 창조자(Author)이며, 누구와도 혈연관계가 없는 것처럼" 우뚝 서 있다._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코리올라누스.

"창조적인 것은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_존 키이츠(John Keats)

"신은 죽었다" 따라서 의미는 발견될 수 없다. _프리드리히 니체.

세속적인 견해로 보면 몸은 우리가 가진 전부이고 우리 존재의 총체인 셈이다. 

"부엌은 삶을 창조하는 스튜디오다... 당신만이 당신의 인생을 그려 내는 미술가다."_ 「장수식의 모든 것」


'타고난 존재'(constituted to be)

'도토리  이론'(acorn theory, 도토리는 상수리 나무라는 본질을 이미 품고 있는 씨앗이다-역주)이라 불리는데, 이는 뉴에이지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리 각자는 영혼뿐 아니라 영혼의 동반자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 보호의 영 혹은 '수호신'(daemon)은 우리의 몸과 부모를 선택하는 것까지 지시한다. 그러므로 삶의 비밀은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이고, 그 보호의 영이 활동하는 것을 감지하여 그 영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도토리는 나무가 되고,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운명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이 관점들이 약점을 드러내고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곳에서 소명은 그 나름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존재로 속박받은' 것이 아니라 '존재로 부름받은' 자들이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우리를 개개인으로 보고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신다. 즉 우리를 독특하고, 특별하며, 고귀하고, 중요하며, 자유로이 반응하는 존재로 대하신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존재로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격인 존재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우리는 개개인으로서 거명되었고, 그분과의 관계로 초대받은 것이다[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 43: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로서 그분께 알려진 바 되었으므로 감사와 더불어 놀라운 전율을 느끼게 된다[시편 기자는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시 139:6)라고 썼다]. 인생을 업(業, karma)으로 보는 것이나, 당신의 장래는 바꿀 수 없게끔 이미 '쓰여져 있다'는 믿음은 소명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이다. 소명에 응답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순전히 자율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 도전에 반응하는 것이 우리 손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소명에 응답하는 것은 그 도전을 향해 일어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대화를 통해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시는 분과 부름받은 자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부름받은 존재'라는 개념은 자유와 미래를 강조한다.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반응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 가신다. 우리는 그분의 소명을 좇음으로써 창조 의도에 맞는 존재가 된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될 존재, 그것도 부름받은 백성으로서 재창조될 때에만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이생에 고정되어 있거나 최종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성격의 소명을 거부하고 발육 부진에 걸릴 수도 있다. 즉, 반응이 더디고 무책임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소명에 응답하여 유일하게 부르시는 분이 우리를 훌륭한 피조물로 빚으시게 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몰아내고 그분이 우리를 취하시게 할수록 우리는 더욱 진정한 자아가 되어 간다. "다른 대안은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그분께 저항하여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려고 발버둥칠수록, 나는 물려받은 유전과 성장 배경, 환경과 자연적인 욕망에 더욱 지배당하게 된다. 사실상 내가 그처럼 자랑스럽게 '나 자신'(Myself)이라 부르는 것은, 내가 시작하지도 않았고 중단시킬 수도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만나는 지점에 불과한 것이 된다."C. S. Lewis. 

우리는 그리스도께 응답하고 그분의 부르심을 좇을 때에만 진정한 자아가 되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갖게 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있다. 


"....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나를 조롱하고 이 고독한 질문을 비웃는다.

내가 그 누구든지, 오 하나님 당신은 아나이다.

내가 당신 것인 줄을."  

                                  _ 디트리히 본회퍼



■ 묵상 질문

당신은 당신 존재의 신비로운 비밀을 알고 싶은가? 그리고 날 때부터 당신에게 의도된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나사렛 예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