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소명(The Call)- 오스 기니스(Os Guinness)
개신교적 왜곡
영적인 것을 희생시킨 채 세속적인 것을 격상시킨 세속적 이원론이다. 세속적인 것을 영적인 것에서 완전히 갈라 내어, 소명(vocation)을 일을 대치하는 용어로 축소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명의 목적을 완전히 저버린 채, 역설적으로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가톨릭적 왜곡으로 되돌아갔다. 외견상으로는, 소명을 순전히 영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원론이 소명을 순전히 세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원론보다 더 나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개신교적 왜곡의 재앙에서 회복될 길은 있는가? 먼저 부르는 자(Caller)를 배제시킨 소명의 개념을 뒤엎고, 다음으로 일차적 소명의 우선 순위를 회복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소명이 부르시는 분이 빠진 무엇인 척하는 말장난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식의 말장난을 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부르시는 분이 없다면 소명도 없다. 단지 일만 있을 뿐이다.
둘째, 좀 더 적극적으로 일차적인 소명을 우선적인 위치로 복귀시켜야 한다. 소명의 배경이 되는 예배를 회복하고 소명의 핵심인 예수님에 대한 헌신을 회복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경계하라. 그분에 대한 헌신의 최대의 경쟁자는 그분을 섬기는 활동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지 그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_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
일을 너무나 즐기고 좋아하고 사실상 일을 예배하는 나머지 예수님에 대한 헌신이 중심에서 밀려나지는 않는가? 우리는 섬기는 활동이나 유용성, 하나님을 위해 생산성 있게 일하는 것을 강조하는 나머지 막상 그분을 잊어버리지는 않는가? 우리는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우리의 이름을 길이 남기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처럼 인간적인 성향으로 깊이 빠져드는 길을 차단한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어떤 것을 하도록 혹은 어디론가 가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로 부름받았다. 먼저 특별한 일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름받았다.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다른 어떤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는 두 가지 소명을 함께 묶음으로써 두 가지 왜곡을 피해야 한다. 즉 일차적인 소명을 강조함으로써 개신교적 왜곡을 극복하고 이차적인 소명을 강조함으로써 가톨릭적 왜곡을 극복해야 한다. 이원론은 소명을 무력하게 하지만 총체적인 이해는 소명이 위력을 발휘하게 한다. 즉, 하나님의 것이 되고자 하는 열정은 소명에 응답하는 모든 이의 에너지를 모으게 된다.
■ 묵상 질문
당신은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영원히 그분의 것이 되기를 소원하는가? 그리하여 첫 번째 것은 항상 첫 번째 자리에, 두 번째 것은 그 자리에 두기를 원하는가? 나사렛 예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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