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세속화된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성례에 가장 가까운 활동이다."
수전 손택
수도사와 짐승
※ 니힐리즘: 모든 도덕적. 형이상학적 진리를 부정하는 허무주의
달리의 구원
초현실주의(surrealism)
집단 무의식의 초현실주의: 비합리성이 구원이다.
살바도르 달리(에스파냐의 초현실주의 화가(1904-1989).
프로이트에 공명해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했다.)의
「기억의 고집」(1931)
바전의 설명에 따르면, "구원의 소망은 예술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가르는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재정의되었다."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인격적인 신이 주는 구원이 아니라, 생명력에 몸을 담그는 데서 오는 구원이었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는 존재와 관계를 맺는 신비한 일이다.
놀이하는 미술가
추상표현주의는 생명력이 예술가를 통해 창조를 이루어 내려면 모든 의식적 통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표현주의: 무의식을 활용하기 위해 우연을 사용한다.
아실 고키의 「소치의 정원」(1940)
중요한 것은 미적 특성이 아니었다. 이미지가 미술가의 의식을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내부의 외부인
자연적이고 변질되지 않은: 어린아이와 야만을 모방하다.
파울 클레의 「지저귀는 기계」(1922)
오늘날 우리는 인간 내면의 핵심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낭만주의의 생각에 더 회의적이 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죄 개념이 인간성에 대한 더 신빙성 있는 견해를 내놓는 것 같다.
사르트르와 침묵
불합리와 무의식에 대한 낭만주의 전통의 관심은 계몽주의 전통과의 충돌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둘 사이의 긴장은 커지다 못해 결국 한계점에 이르렀고, 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할 것 같았다. 위층과 아래층이 분리되었고 둘의 차이는 화해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자연과 자유를 나눈 칸트의 틈은 이제 건널 수 없는 협곡이 되었다.
이것을 이해하면 '실존주의(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 19세기의 키르케고르와 니체, 20세기의 독일의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프랑스의 마르셀과 사르트르 등이 이에 속한다.)'가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건널 수 없는 그 협곡을 꿋꿋이 들여다보았고 괴로운 소외감을 토로했다. 인간과 우주를 이어 줄 우주 정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차갑고 낯설고 비인격적인 세계와 홀로 대면하여 선 개인이 있을 뿐이었다.
실존주의의 부조리 개념은 '신의 죽음'이라는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궁극적 진리와 정의, 사랑, 의미를 향한 인간의 열망을 채워 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에서 정의하는 진정한 존재로 살려면 삶에 의미가 없는 줄 알면서도 용감한 표정을 하고 의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폴록이 되도록 저주받은
실존주의자들은 이상적이거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완전히 부인했다. "인간 본성은 없다. 인간 본성을 정의해 줄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_사르트르. 따라서 그들은 보편적인 도덕적 지침의 존재도 완강히 부인한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선택을 내리고 살아가면서(실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낼 뿐이다(본질).
실존주의자들에게 인간은 끊임없는 진화의 흐름에 갇힌 존재다. 종(種)이 계속 변하고 진화하듯, 개인도 고정된 선악 개념을 버리고 삶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자유로워지도록 저주를 받았다."_사르트르. 완전한 진공 상태에서 행동하고,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모른 채 자신의 의지 이외의 다른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행동을 통해 매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행위 미술가는 말 그대로 미술 창조 행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창조하려 했다.
실존주의의 행위미술: 행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창조하다.
잭슨 폴록의 「31번」(1949)
그들은 구도상의 관례를 모두 포기함으로써, 의식적이든 아니든 구속력 있는 지적.도덕적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존주의의 테마를 전달하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흐름뿐이었다.
알파도 오메가도 없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소설이 잘 짜인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등의 문학적 관례를 포기함으로써 해방을 선포했다. 성경은 역사가 선형적이라고, 곧 모든 잘못이 바로 잡히고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미래를 향해 명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가르친다. 모든 사건은 이 전체적인 목표와 목적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서구의 지식인들은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목적 지향적 역사 개념을 상실했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문화권에는 선형적 역사관 자체가 없다. 삶은 끝없고 의미 없는 현재로 쪼그라들었다.
모더니즘 작가들도 '의식의 흐름' 양식을 실험하여 자유롭게 흘러가며 진화하는 유동적 경험 속으로, 삶의 흐름 속으로 독자들을 던져 넣었다.
실존주의를 가장 일관되게 표현한 장르가 부조리극(이치에 맞지 않는 극작품이라는 의미로, 1950년대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난 일군의 극작가의 작품에 붙인 이름이다. 구성이나 성격묘사가 불합리하고 기이하여 전통적인 기법을 거부하며 인간 실존의 환상과 몽상적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이었다.
카뮈와 사르트르 같은 초기 실존주의자들은 주의 깊게 구성된 드라마와 소설로 세상에는 의미있는 질서가 없다는 철학을 전파했다.
이성에서의 도피
시각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들 또한 비합리성을 일종의 해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성' 개념이 이미 너무나 위축되어 더 이상 실제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단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성은 사실만 이야기하고 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질문을 파헤칠 유일한 길이 '이성에서의 도피'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성을 버려두고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믿음의 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믿음의 도약'이라는 표현은 실존주의 신학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쇠렌 키르케고르. 이후 신정통주의(칼 바르트(1886-1968)의 사상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특히 그가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의 신학적 주제들을 근거로 삼아 펼친 논의 방식을 가리킨다.)라 불리는 실존주의 신학 학파가 생겨났다. 신정통주의가 제시한 영적 영역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경이감과 경외감이라는 낭만주의적 분위기"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실의 과학과 의미의 종교라는 이분법"을 수용했다. 그 결과, 종교적 진술을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자의적이고 실존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주장"으로 취급했고, 믿음은 위층으로 가는 "실존적 도약"이 되었다.
이것은 성경이 정의하는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지성을 포함한 전인적 헌신이다. 이성을 아래층에 묶어두는 이분법이 없으니 불합리한 도약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친히 인간의 이성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신다. 많은 독자들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한다"(고후 5:7)는 바울의 말을 은유적 표현으로 보고 "이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듯하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의 요점은 영적 영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비가시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볼 수 없는 현실에 근거하여 행동하려면 엄청난 믿음이 필요하다. 바울의 말은 기독교가 비이성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성이 하나님의 형상의 한 부분으로서 부여받았던 위엄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심지어 정통신학을 믿는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성경적 믿음이 불합리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흔한 것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현대 세계를 상대하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현대 세계관의 핵심에 놓인 믿음/이성의 이분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달리 내놓을 실질적 대안이 없을 수밖에.
섹스, 마약, 로렌스
문학인들 사이에서 이성에서의 도피는 흔히 마약 사용과 성적 방종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흐름은 낭만주의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세속적인 유물론 세계관이 전통적 형태의 영적 초월성을 막아서자, 예술가들은 초월성의 대안적 통로를 모색했다. 오감을 왜곡하고 평범한 의식을 교란시키는 모든 수단을 이성에서 도피하고 위층으로 뚫고 올라갈 기법으로 거의 다 시도하게 되었다.
초월성에 굶주린 나머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더 고차원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위해 울어야 마땅하다.
포스트모던 과학
더 고차원적인 삶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륙전통에서 나온 모든 철학 유파가 공유하는 지향점이 있다. 거대한 기계 같은 이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가 존재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 칸트의 자연으로부터 칸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 아래층의 지적 제국주의로부터 위층을 지키는 것, 과학주의와 실증주의가 만들어 낸 환원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다.
딜타이는 정신과학이라는 명칭 아래 우리가 흔히 인문과학이라는 윤리학, 신학, 인문학, 사회과학을 포함시켰다.
결국 일부 사상가들이 옛 계몽주의의 환원주의에 맞선 역(逆)환원주의를 내놓았다. 자연과학은 경험적 발견이 전부가 아니다. 문화의 다른 부분들과 복잡하게 이어진 풍부한 네트워크다.
이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과학이 위층으로 끌어 올려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아래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위층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탄생이었다.
유클리드, 저리 비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럴듯해 보인 것은 과학 내부의 변화 때문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서구 사상은 두 가지 과학혁명으로 근간까지 흔들렸다. 비(非)유클리드 기하학과 새로운 물리학(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과학적 진리의 본질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리만 기하학(1854년에 독일의 수학자 리만이 발표한, 종래의 삼차원에 대하여 n차원을 다룬 새로운 공간 기하학. 타원형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도 한다.)은 원뿔처럼 양의 곡률을 가진 표면을 다룰 때 유효하다. 아인슈타인은 굽은 공간 개념에 리만 기하학을 적용하여 대중화시켰다.
기하학으로 대표되는 논리적 진리와 물리적 진리가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기하학은 이 기존의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확신에 이의를 제기했다. 각기 내적 일관성이 있지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여러 체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모두가 참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합리적인 것과 참된 것 사이에 처음으로 틈이 벌어졌다. 진리 자체가 산산조각 난 것 같은 상황이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가는 문을 연 것이다.
아인슈타인 너머
새로운 물리학, 곧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었다. 물리학은 뉴턴을 왕좌에서 몰아냈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을 물리학의 토대 위에 놓인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했고,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 정신의 보편적 범주로 취급했다. 그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둘 다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기준틀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했다.
대중은 상대성 이론이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지만 그것을 도덕적.문화적 상대주의를 지지하는 근거로 해석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상대주의를 함축한다는 것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상대성 이론을 '불변성 이론'이라 부르고 싶어 했는데, 그의 계산은 준거틀이 달라져도 물리법칙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운동법칙은 두 준거틀 모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 갈릴레이가 발전시킨 초기 형태의 상대성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원리를 빛 같은 전자기 현상에 적용했을 따름이다. 그는 그 경우에 상대성 이론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이 느려지게 만들어야 했지만, 그의 목표는 전자기법칙이 모든 준거틀에서 동일하다(불변하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오자 아인슈타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의 이론을 정확히 거꾸로 받아들였다.
물리학과 신비주의
양자이론은 아원자 수준에서 뉴턴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양자 수준에서는 대상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관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고전적 구분이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 조건 아래서 관찰할 때 파동으로 기능하던 소립자가 다른 조건에서 관찰하면 입자로 기능한다. 파동/입자의 이중성은 과학적 객관성의 이상을 무너뜨리는 듯하다.
양자이론은 물질의 핵심에 자리 잡은 원자 내부에 불확정성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물리학에 대한 믿음을 잃다
합리성은 진리로 가는 신성한 길이 아니었다. 이제는 과학 자체가 이성에서의 도피를 지지하는 듯했다.
원자의 추락
많은 이들이 새로운 물리학을 자유의지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해방자로 인식하고 환영했다.
양자역학은 자유의지나 기적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제로 하는 일은 고전물리학이 만든 강력하고 오래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양자이론은 결정론이 있던 자리에서 불확정성의 영역, 우연이나 임의성을 본다.
양자역학은 우주에 마음이나 정신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 그저 고전물리학의 범위를 제한할 따름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자를 작은 신으로 대접한다.
모든 세계관은 무엇인가를 최종 실재, 다른 모든 것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상가들이 하나님을 궁극의 원인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많은 이들이 물질을 그 대안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은 근본적인 실재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를 바라며 물질을 그 최소 구성단위까지 쪼갰다. 하나님이 아니라 원자가 우리 운명을 결정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발전과 더불어 그 궁극원인은 우연으로 해체되는 듯 보였다. 모더니즘의 우상이 허물어졌다. 과학 자체가 포스트모던 세계관을 가리키는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
예언에서 패러디로
헤겔의 가르침대로 역사라는 것이 절대정신의 전개라면, 역사의 진짜 주연은 개인이 아니라 정신 자체가 될 것이다. 즉, 역사를 통해 전개되는 내재적 정신력이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문화는 진화의 현 단계에서 나타나는 정신의 표현이다. 범신론적 정신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개인이 실제로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의 생각은 대부분 그들이 선택하거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흡수한 요인들의 산물이다.
헤겔의 범신론은 결국 영향력을 상실했지만 개인이 문화의 생산자가 아니라 산물이라는 생각을 남겨 놓았다. 이 견해에는 반(反)인간주의라는 딱지가 붙었는데, 급진적 비인간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인간이 진정한 도덕적.창조적 행위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자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창조주라는 신 개념을 부정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의 창조성을 부정하게 된다. 이 견해 역시 자살을 하는데, 인간에게 독창적 생각이 없다는 생각은 누가 생각해 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예술가는 예언자로 인정을 받은 자리에서 그를 만들어 낸 더 큰 사회적 힘을 대변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수많은 포스트모던 예술이 조롱과 패러디로 이루어진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팝아트: 패러디와 캐리커쳐.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 곡이 꿈에서도 잊히지 않네요」(1965)
상당수의 팝아트(195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일어난 회화의 한 양식. 일상 생활 용구 따위를 소재로 삼아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타파하는 전위적인 미술 운동으로, 광고.만화.보도사진 등을 그대로 그림의 주제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가 캐리커처와 다를 바 없는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사회의 대변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역할을 맹렬히 감당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들의 작품은 사회의 가장 진부하고 시시한 요소들을 그대로 반영했다.
예술가의 죽음
문학이론에서 창조성 개념의 상실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해체주의'는 텍스트의 의미를 제한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니지만,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자신의 글에는 이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책을 쓰거나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자신의 견해를 스스로 반박하게 된다.
역사상 줄곧 그리스도인의 두 책, 하나님의 말씀의 책(성경)과 하나님의 세계라는 책(창조세계) 은유를 사용해 왔다. 하나님은 둘 모두의 저자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할 '저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 진리의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들이 쓴 저작물의 진정한 저자다. 어떤 텍스트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그 저자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이 모두가 달라졌다. 니체에 따르면, 우주라는 책은 저자가 없다. 권위 있는 사본을 내놓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우주에 대한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신적 창조주를 부인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의 창조성마저 부인하게 된다.
메타서사와 죽음의 수용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신의 죽음이 함축하는 내용, 곧 "세계 역사에 절대적 진리와 단일한 의미는 없다"는 것을 환영했다. 그들은 역사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를 메타서사(metanarrative)라고 불렀는데, 우주의 시작부터 마지막 운명까지를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아우르는 거대 서사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들은 메타서사가 잔인하고 억압적인 정치체계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 대부분은 나치즘과 공산주의 같은 억압적 정치체제를 가까이서 목격한 유럽인이었다. 두 정치체제 모두 그 중심에 단일한 원리(나치즘은 인종, 공산주의는 경제적 계급)가 놓여 있다. 둘 모두 역사가 어떤 이상 사회를 향해 가차 없이 움직인다는 거대한 비전을 받아들였고, 결국 전체주의의 체제로 변하여 비밀경찰과 죽음의 수용소를 정당화하는 데 그들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이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 정권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많은 유럽 사상가들은 전체주의의 근원이 전체화(totalizing)하는 메타서사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인간 경험의 한 가지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격상시키는 모든 메타서사를 '전체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전체주의 체제를 경험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종의 거대한 전체화 이론에 따라 인위적으로 사회를 통합시키려는 시도가 강제, 억압,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이끌어 냈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맞서는 것이 '절대 권력'을 주장하는 자들에 맞서는 최선의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절대적 국가권력을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굳건히 세우려면 사회가 각각의 언어 게임을 구사하는 소그룹으로 분열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사회 전반의 모든 집단을 통합시킬 메타서사를 거부한다.
그리스도인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원주의 비판에 상당 부분 동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해결책에는 자기 반박적이라는 결함이 있다. 포스모더니스트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술하면서 자신의 견해는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기보다, '수행 모순'에 해당한다. 어떤 입장을 진술하는 행위 자체가 암묵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자신의 견해를 진술할 때마다 그 견해를 반박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살을 저지른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다가 자멸한다.
모종의 초월적 진리 없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우려하는 사회적.정치적 악에 맞설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절대 기준이 없으면 "그것이 틀렸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관성 있게 적용하면 악과 불의에 공모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메타서사 부재의 시각적 표현
해체주의 회화. 데이비드 살르
해체주의 건축: 아이러니와 불균형. Frank O. Gehry의 네덜란드 보험회사 건물
정치적 올바름을 습득하는 교실
정치적 몰바름은 전체화하는 메타서사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감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강제가 통일성 부과의 결과라면, 자유를 지키는 길은 차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양성과 문화주의 같은 유행어의 인기 비결도 여기에 엤다.
정치적 올바름의 두드러진 결함은 선별된 집단만을 집어서 '다양성'을 대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종, 계급 성별, 성적 지향에 근거한 공인 피해자 집단이 따로 있다. 문제 분석의 도구는 흔히 마르크스주의다. 일부 집단이 피해와 압제를 당하고, 해방으로 가는 길은 압제자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주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들을 당장 인기를 끄는 이론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기중심적인 반동주의자로 바꾸어 놓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세계관에 내포된 제국주의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제국주의가 되어 버려 포스트모더니스트만이 다른 모든 사람의 숨겨진 이해관계와 동기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곧 그들을 해체하고 그 실체를 폭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각을 달리하는 다른 모든 이들의 입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았다.
마르크스주의, 교회에 가다
똑같은 신마르크스주의가 신학으로 흘러가 흑인신학, 페미니즘신학, 해방신학에 영감을 주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자본주의 같은 경제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어떤 개념적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해방신학은 결국 마르크스주의라는 케이크에 올리는 신학적 장식에 그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가 내놓은 해결책은 어김없이 강제적이고 비인간적이었다.
쉐퍼 사상의 출처
그리스의 형상/질료 이원론, 스콜라 철학의 자연/은총 이원론, 칸트의 자연/자유 이원론.
대륙 전통은 낭만주의 시대 이래로 일이층 이원론과 씨름해 왔다.
사실/가치의 이원론에 대해 실용주의 철학의 설립자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선포했다.
현상학(후설의 철학에서 의식에 직접적으로 부여되는 현상의 구조를 분석하여 기술하는 학문)의 창설자 에드문트 후설은 위층/아래층의 구분을 그 구분이 맨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진단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함으로 통합시키려 했다. 인간이 경험하는 것 중 하나의 한정된 영역을 궁극적 실재의 지위로 격상시킨 오류가 그 출발점이었다. 물질을 절대화하는 계몽주의 유물론에 대한 반동으로 자유로운 의식을 절대화하는 낭만주의 관념론이 생겨났다. 뒤이은 줄다리기를 거치며 서구의 정신은 결국 두 개로 쪼개졌다.
물론, 학문의 본질상 경험의 한 측면을 추상화해야 한다. 그것에 괄호를 치고 분리해 내고 특성을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위험한 부분은 그것을 실세계의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잊기 쉽다는 데 있다. 후설이 말한대로, 우리의 개념이 "생활 세계 속 원래의 기원에서 떨어져 나온 추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그 개념을 잘못된 방식으로 절대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 과정을 역전시키는 데 있다. 추상적이고 전문화된 지식을 그 모체에 해당하는 더 큰 맥락, 곧 인간의 경험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후설의 말대로, 세계에 대한 이론적 '사고'와 온전하고 통합된 이론 이전의 경험'을 다시 이어야 한다.
장님과 코끼리
창조세계의 일부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온갖 비성경적 세계관의 근원, "모든 '주의'의 근원이다" 각 사상가는 자신이 파악한 실재의 일부분이 다른 모든 것을 해석할 열쇠라고 확신한다. 모든 철학은 각 사상가가 자신의 한정된 경험의 지평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마음의 우상을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초월적 창조주를 거부하는 사람은 창조 세계 안에 있는 다른 것 위에 세계관을 새우기 마련이다. 그들은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긴다"(롬 1:25). 이 점에서는 철학자도 다르지 않다. 그들도 피조세계에서 특히 끌리는 일부 측면을 골라내어 우주의 비밀을 열어 줄 열쇠, 인간의 모든 경험을 설명해 줄 개념적 범주의 집합, 다른 모든 진리 주장의 조건이 되는 궁극적 진리, 실재의 중심에 놓인 버팀대로 삼는다. 한 마디로 그것이 마음의 우상이 된다.
물론, 실재의 어떤 부분이 절대화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일부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토대로 세워진 세계관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고 일면적이며 균형을 상실한 면모를 보이기 마련이다. 설명의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것, 격자 바깥에 놓이는 것, 상자 밖으로 빠져나오는 요소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상자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일종의 훤원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실재를 한 가지 차원으로 환원해 버리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는 마음의 감옥, "한 가지 생각으로 이루어진 감옥"과 같다. 그 감옥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모두 존재가 부정되고 억압된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이것을 가리켜 "전체화한다"고 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의 파장은 사상의 영역을 뛰어넘어 훨씬 멀리까지 미친다. 한쪽으로 치우친 세계관, 전체화하는 세계관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종종 정치권력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반에 강요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하면,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주변부로 밀려나, 배제되고 억압을 받는다. 입을 다물어야 하고, 지배와 포섭의 대상이 되며, 통제와 강압을 겪게 된다. 그들에게는 남과 다른 사람이라는 낙인 이 찍히고 '타자'로 인식된다. 정부가 강요하는 우상 앞에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하고, 그것을 거부할 경우 활활 타오르는 압제의 뜨거운 용광로에서 불타게 된다. 세계관 공부는 교실에서 가상적으로 논의할 주제가 아니다. 그 결과는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세의 우상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균형을 잃어 한쪽으로 치우친 세계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내야 한다. 진정한 인권과 인간 존엄의 토대는 성경에 충실한 세계관이 유일하다. 기독교는 초월적인 창조주를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창조세계의 어떤 부분도 부인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그 결과, 기독교는 인도주의적이고 생명을 긍정하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세계관을 제공할 개념적 자원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서구 정신의 분열을 치유하고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회복시킬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다.
도예베르프 같은 사상가는 현상학의 여러 요소를 채택함으로써 다시 한 번 이집트인들을 '약탈'했다. 그리스도인은 분석 전통 안에서 활동할 방법을 찾아냈듯이 대륙 전통 안에서 활동할 방법도 찾아냈다. 거기서 성경적 세계관과 양립할 수 있는 요소를 찾고 변형하여 활용한 것이다.
짐승과 광인
분석 전통과 대륙 전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질상 어느 한쪽에 글린다. 분석적인 사람(과학자나 기술자)은 아래층 세계관을 가지고 잇을 가능성이 높다. 창의적인 사람(예술가나 작가)은 위층 세계관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도인은 두 유형 모두에게 복음이 믿음직한 것임을 보여주는 부름을 받았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세계관 공부는 우리가 상대하는 각 사람에게 맞춤한 방식으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게 해준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전통의 요소 모두를 가지고 있다. '가치' 영역의 견해는 낭만주의 사고 영향을 받고, '사실' 영역의 견해는 계몽주의 사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 전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 여가, 오락의 사적 영역에서는 낭만주의적 주관주의가 널리 퍼져 있고, 경제, 학계, 의료, 정치 같은 공적 영역에서는 계몽주의의 공리주의가 지배한다.
두 문화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막다른 길에 이른 이들의 곤경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_캘빈 시어벨트
"많은 작품들이 무의미한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려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작품이 미술품으로 전시된 이유는 종교적 중요성에 가까운 메시지를 제시하며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_로크마커
그리스도인은 그 메시지를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힌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나 연민이 없는 신학적 정통만큼 추악한 것도 없다. 진실한 공감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대안을 제시할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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