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을 통해, 우리 시대는 스스로에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윌리엄 배럿
가스실의 하나님
사변적 철학이나 세계관이 압제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은 현대적인 현상이다. 세계관은 무해한 추상에 그치지 않으며 실제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이 있다.
전체주의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궁극적 결과다. 니힐리즘(허무주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부인하는 유물론 세계관에서 니힐리즘이 생겨난 것이다. "오늘 나온 하계의 추측이 내일은 군대를 움직이고 제국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_그레셤 메이첸
가스실은 관념이 중립 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오류임을 일거에 드러냈다. 오늘날 각종 이데올로기는 국가의 통치 방식과 경제 운용 방식, 언론이 뉴스 프레임을 짜는 방식,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갈 교육제도를 결정한다. 세계관과 관련된 질문과 씨름하는 일은 지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관을 다룰 때는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좀비 예수
젊은이들이 도덕적 유혹뿐 아니라 철학적 유혹과도 직면하며, 그 유혹이 대중문화의 언어로 표현된다. 젊은이들에게는 세계관을 알아보는 기술의 습득 여부가 말 그대로 영혼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 관념이 유튜브 동영상에 담기거나 극장 화면의 빛나는 영상으로 번역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사이더 하우스의 규칙을 깨뜨리다
낙태를 옹호하는 영화. 라세 할스트롬의 「사이더 하우스」(1999)
"모든 영화는 세상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담은 일련의 신념과 가치, 곧 세계관을 제시한다."_제임스 스피겔
영화를 볼 때는 이 영화는 어떤 세계관을 전달하고 있는가? 참된 요소가 있는가? 거짓되고 파괴적인 요소가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묻지 않으면, 비성경적인 관념들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재미로 읽는 책(또는 오락거리로 보는 영화)이 진지한 책보다 우리에게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친다. 왜 그럴까? 우리가 긴장을 풀고 있을 때는, 경계를 풀고 불신을 접어 두고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저자나 시나리오작가의 생각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의식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된다. 불신을 접어 둘 때는 비판의 기능까지 접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괴상한 선
그런 질문을 해야 할까? 데이빗 O. 레셀의
「아이 러브 허커비」(2004)
그리스도인은 지난 세기 동안 '요새 심리'를 채택하고 사람들의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학문 영역에서 가장 깊이 생각하고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왜 최고의 책과 영화는 그리스도인의 작품이냐고 의아해하기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이다."_C. S. 루이스
우디 앨런, 다시 해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재다.
우디 앨런의 「범죄와 비행」(1989)
인간은 근본적인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 도덕이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객관적인 도덕이 있다면 우리는 거기 미치지 못하는 죄인이다. 그러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리의 행동은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앨런은 죄책을 피하기 위해 무의미를 선택했다.
칠대죄
실존주의적 믿음의 도약, 데이빗 핀처의 「세븐」(1995)
이것은 실존주의다. 객관적으로 말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세상은 우주적 정의도, 초월적 도덕도, 악이 궁극적으로 바로잡힐 것이라는 희망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층으로 믿음의 도약을 하여 정의를 위해 계속 싸울 수 있다. 객관적인 토대는 전혀 없지만, 선악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각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카뮈, 극장에 가다
너는 네 작은 우주의 신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1999)
철학적인 요점은 객관적 실재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현실은 가상이다. 다 만들어진 것이다." "실재관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의지의 창조행위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우주의 주인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개인이 진정성을 갖추려면 그 자신의 우주에서 신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모두는 가족, 사회, 문화, 국가, 종교 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가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해 그들이 만든 틀에다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실존주의 시각으로 볼 때 정해진 역할이나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준과 기대에 얼마나 갇혀 있는지 인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크로넨버그는 영화 속 이야기 안에서 진리, 실재, 그리고 인간 자유의 문제와 씨름한 것이다.
매트릭스 만들기
종교상품의 슈퍼마켓.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1999)
에단 호크, 꿈을 꾸다
깨어 있는 삶은 통제된 꿈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2000)
대륙철학 수업용으로 적당한 만화영화. 우리가 꾸는 꿈은 점점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는 집단 무의식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확장된 의식은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할 어떤 현실이 존재하는가, 이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를 창조했고 사랑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한들 삶의 무의미함만 더욱 각인될 뿐이다.
엘비스와 삶의 의미
범신론을 옹호하는 영화.
제임스 케머런의 「아바타」(2009)
이유 없음에 대한 반항
사회가 니힐리즘을 설교할 때,
니콜라스 레이의 「이유 없는 반항」(1955)
인간의 삶이 하찮고 일시적이고 무의미하다니, 이것은 아래층 세계관을 지지하는 노골적인 설교다.
영화 속 젊은이들은 그들이 살아야 할 어떤 이유도 내놓지 못하는 부모들을 참아 내지 못하고 그들에게 분노한다. 젊은이의 반항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그렇듯 부질없다.
「아이 롯복」과 「스타 트랙」
여기에는 인간이 고도로 발전된 기계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인간이 복잡한 토스터기 이상의 존재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논쟁은 일반인과 동떨어진 학계만이 아니라 극장과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벌어진다.
※ 안드로이드: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대표적 SF 용어. 겉보기에 말이나 행동이 사람과 거의 흡사한 인조인간 로봇을 의미한다.
「펄프 픽션」이 진짜 말하는 것
네 삶을 내 지배 아래 놓아라.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1998)
방금 목격한 기적? 쿠엔티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1994)
"구원 개념에 충실치 않았다면 「펄프 픽션」은 근사한 재주를 부린 작품에 그쳤을 것이다. 구원 개념을 다룸으로써 이 영화는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미심장한 작품이 되었다."
우리의 세대를 위한 세계관
영화를 예술 작품이나 오락으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영화가 우리 세대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도 경계해서 보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항의와 보이콧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기 위해서다. 대중문화 '판독법'을 익히면 사람들과 더 잘 교감하고 생명을 주는 성경의 진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으로 전달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나름의 영적 전쟁을 치른다. 교회와 대학 캠퍼스, 극장과 텔레비전, 콘서트홀과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은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분이 하신 대로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부름 받은 존재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서는 세속주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인도 문화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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