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3:1-8)
유대인이 누리는 유익과 그들의 실패
율법을 받았고 할례를 행하여 왔고 성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판정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율법을 내면화하여 본인의 실력으로 갖고 있지 않다면 율법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죄를 면할 수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저들에게 찾아와 교제하시고 약속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배반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심을 신실하게 지켜 오셨으며 지금도 지키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력이나 결정에 의해 결코 흔들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답입니다.
핑계 대는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과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지금도 신실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한 것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에 영향받지 않으시고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후손들로 국가를 이루신 것같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과 국가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 전 인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약속이고 일방적 선포입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원리는 하나님의 철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그분의 중요한 성품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할 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와 회복과 구원의 능력을 무한한 것으로 선언하고, 신실하심이 이루어 내려는 하나님의 뜻과 의로우심과 목적을 이야기할 때는 그 의로우심에 대해서도 무한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약속을 지켜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도 무한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의로우심도 무한합니다. 이는 하나는 동으로 가고, 하나는 서로 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 속에 책임이 있고, 책임 속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이 자식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도망할 수 없는 책임
하나님은 온전하게 홀로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시며 자비하시며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불의를 필요로 하거나 우리의 불의를 조건으로 삼아야만 실현되는 부분적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있어야 빛이 나는 그런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어두운 색을 배경으로 칠해야 강조되는 밝은 부분처럼, 불의를 필요로 하는 식의 의가 아닙니다. 어두움을 전제해야만 자기의 밝은 것이 표현되는 그런 제한된 거룩과 공의와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신 분입니다.
먹으라는 것부터 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먹지 말라는 것부터 먹었을까, 이렇게 읽어야 옳습니다.
우리의 거짓말
신자로 사는 자의 명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광스러운 명예를 부여받게 된 것이죠. 명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를 얻도록 하나님이 지시하신 거룩한 길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선민으로 사는 명예를 스스로 외면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복하지 마십시오. 예수를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셔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당신을 나타내신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개입이요, 간섭이었습니다. 예수는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의 실존과 현실에 찾아오사 우리를 움켜쥐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시내 산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신약에서는 이렇게 더 깊고 넓게 펼쳐집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의지, 하나님이 당신의 기쁜 뜻과 거룩한 목적을 방해받지 않고 기어코 이루시겠다는 의지, 이 일을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를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에 담긴 깊은 의미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시다’라는 말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구체적으로 일하셨는지를 확인하십시오. 두려워해야 합니다.
기도
헛된 세상에 지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의 명예를 지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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