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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바울 평전-톰 라이트

6장. 안디옥과 예루살렘 / 2부 왕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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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바울의 메시지는 다른 시각, 새로운 사회적 실체를 만들어 냈다.
그가 모든 메시아 백성이 동등하게 환대받으며 모든 이가 이제 막 닻을 올린 ‘나라’의 ‘상속인’임을 확실히 보장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동트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 그리고 신성神性을 지닌 영이라는 강력한 선물은, 이방 세계를 사로잡았던 ‘권세들’이 뒤집어졌으며 이제 메시아를 믿게 된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더럽게 했던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했다.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실체를 형성했다. 새 공동체의 형성 및 유지와 100퍼센트 관련이 있었다.

‘연기하다’를 가리키는 그리스어가 휘포크리시스hypokrisis인데, 여기서 위선을 뜻하는 영어 단어hypocrisy가 나왔다.

이제 바울은 죄가 중요한 문제이며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명히 믿는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나 안디옥이나 갈라디아에서는 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약 가족 안에 있는 신분이다. ‘의롭다’는 말은, 종종 이렇게 번역하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단어처럼, 여기에서는 한 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 ‘관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언약 가족의 일부라는 것이며, 언약 가족은 유대 율법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메시아 예수의 신실하심을 통해” 정의된다.

(1)메시아 예수가 하나님의 목적에 철저히 신실하여, 그가 다른 곳에서 말한 대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9 (2)예수를 따르는 것—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는 가장 중요한 충성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는 것, (3)예수를 따르는 자임을 외부인에게 보여 주는 표지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 (4)이 예수 형상을 한 충성이 정말 중요하다면, 율법이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예수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메시아가 인도하신 길, 죽음을 통해 새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로 가는 것이다.
열심 있는 유대인인 그조차도 이 길을 걸어가야 했다면, 그것은 분명 이 길만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율법 자체는 그보다 뛰어난 새 실체, 곧 메시아가 이루실 실체가 나타나면 무대 뒤로 사라질 순간을 예상했었다.

세례는 옛 생활을 버리고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감을 뜻한다.

메시아 바로 그분 그리고 그 메시아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에서 발견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원하는 게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충성이라면, 그 충성이 진정 어떤 모습인지를 모든 시대를 상대로 정의해 준 것이 바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진정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메시아라고 선언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거기까지만 이끌 수 있다고 선언하신 셈이다. 모세는 약속받은 땅 곧 이스라엘이 받을 ‘유산’을 가리켰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기로 데려가지 못했다. 갈라디아서는 온통 하나님이 약속하신 궁극의 ‘유산’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곧 보겠지만, 바울은 이 ‘유산’의 ‘상속인’을 토라가 정의하지 못하며 오직 궁극의 ‘상속인’인 메시아만이 정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람들을 ‘이 세대’에서 구하시고 ‘오는 시대’를 여시고자 사람으로, 예수라는 사람으로 활동하셨다.
새 시대는 ‘이 시대’가 아직 굴러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직접 초래한 결과였다. 이 계획을 통해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셨”고 이 계획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힘이 부서지고 새 세계가 시작할 수 있었다.

첫째,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바울은 예수를 통해 일어난 일이 새 창조의 시작임을 되새겨 준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옛 창조를 끝낼 시간이 되었음을 밝히시면서 옛 창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새 창조를 시작하셨음을 뜻한다.

둘째, 복음 사건 속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바울 자신의 사역에서 일어난 일은, 사실 성경이 하나님의 계획이라 밝힌 것의 완성이다.
''나는 너희에게 예수를 통해 일어난 일과 내 자신의 사역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이스라엘의 성경이 늘 보여 주었던 일임을 증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당신이 이전에 약속하셨던 일을 행하셨고, 새 창조를 이뤄낼, 하늘에서 당신 나라를 이루시듯 땅에서도 이뤄낼 운동을 시작하셨다.

세 번째로 대단히 중요한 점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이 모세가 제기했던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
모세의 토라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살릴 목적으로 주셨으나, 그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뤄지기 이전 시대까지만 유효하다는 시간 제약이 있었다. 이제 이 약속이 이뤄졌으니, 토라는 더 이상 이 주제에 관하여 할 말이 없었다.
. 메시아에게 속한 이는 모두 아브라함의 참된 ‘씨’요, 하나님나라와 새 창조라는 약속을 유업으로 받기로 보장받았다.
하나님은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행하셨지만, 이는 거룩한 유대인과 사악한 이방인을 갈라놓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식구가 되는 믿음의 가족을 세우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늘 뜻하시던 일이었다.

넷째, 이 일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새 출애굽’을 통해 이루어졌다.
온 세상이 노예로 잡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 이 세상을 구하시고 당신의 영이 내주하게 하셨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당신이 늘 생각하셨던 단일 가족을 창조하셨다. 이 가족 구성원을 규정하는 특징은 믿음, 곧 피스티스다. 유일하고 확실한 표지는 피스티스—믿음, 신실함, 충성—이다. ‘메시아의 믿음’, 곧 그의 죽음이 죄의 힘을 이김으로써 사람들을 이 악한 시대에서 구해 낸 메시아 자신의 신실하심이다. 그 믿음은 복음의 메시지가 불러일으킨 믿음이요, 예수가 주Kyrios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음을 믿음으로써 메시아 자신의 신실하심을 그대로 되울려 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복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바른 길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충성이다. 곧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로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이제는 영을 통해 활동하시는 살아 계신 참 하나님, 한 분 하나님께 바치는 충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꿔 놓았다. 그것이 새로운 충성이요 논란의 대상이 된 충성이었다. 하지만 피스티스라는 단어는 본디 그것이 갖고 있던 이런 의미를 떠나지 않으면서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예수를 알리는 소식을 듣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용솟음치는 인격적 지식과 신뢰, 하나님의 친밀한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것마저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말하자면 바울의 유명한 ‘이신칭의’론(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보통 이신칭의 교리라 번역하나, 바울이 이를 주장한 때는 아직 교회의 공식 교리로 확정되기 이전이므로 교리라 번역하지 않고 논論이라 번역했다.)교리이다. 복음을 믿고 복음이 드러낸 한 분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은 아브라함이 약속받았던 온 세상을 아우르는 단일 가족의 식구로 알려지며 그도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알게 되리라는 의미다.
새 창조의 전위대, 새 전망vision
영은 마지막에 받을 유업, 곧 새 창조라는 약속된 땅을 내다보고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새 창조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임은 모든 이가 알았다. 그러니 이제 다른 민족이 들어온다면, 모세의 율법이 부여한 제약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은 새 세대가 시작된 셈이다.

그가 했던 일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바울 자신이 내놓은 대답은 바로 예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한 분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구현하신 예수가 바로 그 원동력이었다.

이 ‘회심’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자신이 죽음으로 내려가시면서 유대 세계 전체와 그 전통을 포함하여 온 세상을 당신과 함께 가져가신 뒤에 죽음에서 새로운 형체로 나타나셨다는 의미요, 이제 그 메시아께 속한 모든 이가 그 죽음과 부활과 그에 따르는 새 정체를 공유한다는 의미였다.
한 분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라는 충격적 형상 속에서 당신의 오랜 목적을 드러내셨으며, 그것이 만물을 바꿔 놓았다. 그리하여 충성의 의미가 쟁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