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 박영선 목사의 <인생>
# 본문: 엡 5:15-18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
허랑방탕하다는 것은 '헛되이 썼다', '낭비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방탕하다는 것은 시간과 기회를 헛되이 놓쳐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 충만을 말하는 이 말씀은 시간을 잘 써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라는 권면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가 있습니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는 것'이므로, 아직은 거룩하지 않다는 현재 상태를 전제한 단어입니다. 거룩하게 되어가는 중이니까 아직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과정을 거쳐서 성화가 완성된다는 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에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이 생명을 만드시고 운명을 완성하시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하시며, 우리의 소원이 더 깊고 높은 곳으로 향하도록 인도하는 과정을 지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지, 단번에 추호도 흔들림 없는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2
'시간'이라는 관점!
과거에 일어난 예수의 사건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 놓았습니다. 그 든든한 토대 위에서 선조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죄인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예수가 이루신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오신 사건으로 결정지어진 운명 위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도한 것을 결국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을까요?
우리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 선조가 선택한 불순종의 결과와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 안에서의 승리를 대조하여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한 후, 스스로 항복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요, 개인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죄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데서부터 출발하게 하십니다.
누구나 결국 이문제로 주님과 대면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항복하여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항복!
그 항복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알게 될 때에야 할 수 있는 항복입니다.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12-15)
십자가는 예수의 고통만 드러나는 자리가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세상의 실체, 세상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모두를 사망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언하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약속은 결국 사망을 피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모든 가치, 모든 약속을 헛되게 하며, 모든 것이 헛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3
세상에 지면 세상이 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오히려 우리에게 인생의 기회로 주십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포기하고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몰아가십니다.
탕자는 세상은 소모되는 곳, 다 빼앗기고 망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생산력이 없습니다. 세상은 생산하지 못하며 가치를 만들지도 못하며 우리의 운명을 명예롭게도 복되게도 못합니다. 있는 것을 부패시키고 더럽히고 실패하게 하여 죽일 뿐입니다.
"얘야, 내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큰 명예이고 위대한 일인지를 모르면 작은 아들이 부럽습니다.
나이를 먹지 않으면 성숙한 신앙에 이르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든 살쯤 되어 세상이 얼마나 거짓 되었는가를 증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의 거짓이 겁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망신을 주고 고통을 주고 끝내 죽이는 것이 다입니다. 세상은 그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것은 창조주이며 구세주인 분이 세상에 왓음에도 세상은 그에게 사망밖에는 줄 것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실상을 보여준 자리입니다.
작은 아들이 재산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래 가지고 가라"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 주시는 하나님과 그런 하나님을 못 밖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 대조되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대조를 경험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몰랐을 때, 구하지 않았을 때, 의로움을 우리의 운명으로 정해 놓으시고 '자, 지금부터 살아 보자'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각각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 운명을 가지고 아담의 선택으로 인한 죄인의 자리에서부터 삶을 시작합니다. 너무 일찍 정답에 이르지 않아도 됩니다. 지짗 때까지 허랑방탕할 수도 잇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가치와 하나님의 모적의 깊이와 무게를 뼈저리게 아는 자리까지 가십시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인생을, 기독교를, 하나님이 예수를 시간 속에 보내셨고 십자가를 세우셨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뀔 수 없는 결과를 두고 그때는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사극의 재미입니다. 결과를 다 아는 우리는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보입니다.
"결국 너희가 이길 거니까 거기서 너무 겁내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멋있게 굴어. 괜찮아. 네가 이겨" 하고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멋있게 굴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게 그런 것입니다. 사극처럼 번복할 수 없고 바뀔 수 없는 결과를 이미 아는 상태에서 과거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인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진, 돌이킬 수 없는 구원을 운명으로 확보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놀라움입니다.
억울할만큼 나쁜 조건 하나하나가 다 기막힌 컨테스트이며 오히려 멋있게 굴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멋잇는 역을 해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입니다.
'너에게 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적극적으로 위대하게 해내라'라는 요구입니다.
삶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이미 확보해 놓은 승리를 누리고 증언하는 명예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확보한 이 승리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선택하는 책임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각자의 현실을 살아 내십시오. 위대하게 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여 만들어 놓으신 것이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고 미래로만 미루어져 있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회를 살아 보라고 합니다. 어차피 이길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우리가 처한 구체적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말입니다.
매일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같이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지 마라, 잠에서 깨라, 술 취하지 마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너희에게 준 시간을 명예롭게 써라, 져도 좋다, 만일 지게 되면 진 것이 내용이 되고 발판이 되도록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
실력을 키우십시오.
말로하지 말고...자기 몸으로 살아 내십시오.
그래야 자기실력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방법입니다. 이 과정을 멋지게 해내야 합니다.
실컷 경험해서 기꺼이 자발적으로 주 앞에 나를 맡기는 날까지 이르도록 하나님이 인생을 살아 보자고 하십니다.
사람은 은퇴해야 철이 듭니다. 현역일 때는 뭘하고 있다가 은퇴해야 철이 들까요? 하나님의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인생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철들게 하려고 인생을 주셨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타협하시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유수를 심판이라고 부르는데, 이 심판은 멸망시키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심판은 사랑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받는 꾸중은 우리의 못난 것을 고치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좋은 일을 하게 하는 그런 채찍질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꾸중을 받는 시간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우리의 정체성에 녹여내는 시간인 것입니다. 죄 안 짓고, 욕 안먹고, 불평 안 하고, 쓸모있게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정도를 목표로 삼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교훈입니다.
기독교는 효도하고 충성하고 의리 지키며 사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거룩한 지혜와 능력과 의지가 담긴 하나님의 포기하시지 않는 정성입니다. 신자는 그런 요구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인생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와 자책, 곧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는 인식만큼 인간성이 발전하고 채워지는 데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단지 도덕적이고 유용한 존재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항복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기쁨을 누리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명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동참하는 자발적 선택을 하라고 요구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가 기독교 신앙의 약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마다 나이를 먹듯이 신앙도 해마다 자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은혜와 성실한 일하심이 나날이 우리 안에 누적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불변하심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각자의 실력만큼 하시고 그만큼 자라나십시오. 하나님은 일하시다 그만두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선택하고 살아 내어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까지 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의 결정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우리 스스로 납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이 놓지 않으실 테니 걱정 말고 가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인생입니다.
4
온 역사와 그 모든 정황이 우리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 원망스러운 시대를 살지만 그런 조건들이 다 제 역할을 합니다. 그 일들이 우리에게 위대한 기회를 열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실력만큼 마음껏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잘한 것도 담기지 못합니다. 세상은 그 끝이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인격에, 인간의 가치와 명예와 위대함에 쌓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기쁨이요 자랑입니다.
기뻐서 죽겠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있는 이 위대함을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서 각각의 특수한 조건 속에 담기는 하나님의 무한을 배웁니다. 각자 마땅히 생각할 것 이상의 생각은 품지 마십시오. 각자의 조건 속에 매여 계십시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고뇌하고 최선을 다해 싸우고 시험받고 울고 후회하고 원망하는 일을 겪어 내십시오.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4-8)
자기 분수를 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너희가 지는 책임은 무한 책임이 아니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것까지 해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반응과 책임으로 하나님의 일이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다 이루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일의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한 수준에 오도록 붙잡힌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에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주어진 몫, 할 수 있는 것을 하십시오. 할 줄 아는 것을 하고 할 줄 모르는 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잘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것은 기를 써서 잘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과장도 하고 헛다리도 짚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배웁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채워 가십니다.
세상이 가진 사망이라는 권력마저 뒤집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로 하나님의 일이 실패한다면 십자가 사건은 진작 취소되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과거 역사에다 심어 놓아 취소될 수 없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번복될 수 없도록 못 박아둔 조치입니다.
'십자가는 취소될 수 없다. 나는 실패할 수 없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그들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자랑이 방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5
'너희 인생이 기회인 것을 기억해라, 잘 살아라, 져도 된다, 잘못해도 된다, 그러나 그것 하나하나 제대로 마음에 담아라, 생각 없이 지나가지 마라, 깨어라, 깨어 있어라, 생각하고 있어라, 곧 술 취하지 말라'
어른이 가지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포용과 관용입니다.
자식들을 포용하고 기다려 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기다리는 것을 초조해 하지만, 믿음으로 이 자리에 오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헛되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용서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생애 속에서 우리를 붙들고 하시는 그 모든 씨름을 성의 있게 직면하여 소홀히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제대로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지금 그 나이가 제일 중요하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라'
하나님은 우리를 결국 명예로운 자리, 위대한 자리, 세상이 만들지 못하는 존재로서 증언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이제껏 일어난 인류 역사의 일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만 늘어나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읂/ㅔ를 담으려고 하시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재앙도 재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명예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방법이면서 인간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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