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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박영선의 욥기 설교-박영선 목사

23. 욥_ 하나님이 답하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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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 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30: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 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24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6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27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28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30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33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34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 29:1-31:40)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욥

과거에 하나님이 욥을 높이시고 욥을 통하여 일하셨을 때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돌보심이 나타났던 것이 사실이었듯이 지금 욥이 억울하고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자리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서 이 비겁한 자들이 욥을 놀리고 조롱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공포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도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고, 현재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욥은 이 일에 대해 무죄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답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불경을 저지르거나 거역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다. 내 과거가 사실이었듯이 현재의 상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 일을 허락할 수는 없다. 세상과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니까 이것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이해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님이 과연 누구신지, 하나님이 답해 주시기를 바란다.’ 욥은 지금 ‘나는 무고합니다’라고 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현실을 들이미시는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은 대단히 활동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정적이며 개념적이며 교리적인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역동적 관계, 온갖 변화와 불확실성이 개재된 가운데 구원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전망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어떤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관한 설명도 그렇고 인간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역사 속에 놓아둡니다. 역사는 사건,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에 개입하시고 일하시고 말씀하시고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나 주시는 분이 아니라, 매일 오늘이라는 현실을 우리에게 들이미시는 분입니다.

순탄한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시고 그 창조를 다스리시고 개입하시고 말씀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신실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개입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입니다.





치열하게 씨름하시는 하나님

야곱을 항복시키기 위하여 씨름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본문입니다. 밤새워 격론하고, 밀고 당기고, 그 씨름에 목숨을 건 하나님 말입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는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 일을 하십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 인간성을 입히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맨발로 뛰어나오시는 하나님, 피범벅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욥을 흔들고 있고, 욥은 그 피범벅 속에서 드디어 서는 것입니다. ‘나를 여기까지 미신 하나님, 이제 당신이 어떤 분인지 말씀하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욥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현실에 대해 답할 다른 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욥기 31장 40절 마지막에 나온 ‘욥의 말이 그치니라’의 뜻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아들을 육신으로 보내사 우리 손에 수모를 당하게 하시고 고통 속에 죽게 하셔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비명을 지르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흔들어 깨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 주시고 그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시는 하나님, 우리와 씨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제 현실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씨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항복하지 않았던 현실이 지닌 무게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삶의 경이로움

‘하나님, 제 현실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와 ‘답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라는 서로 묶일 수 없는 것이 함께 묶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다만 신성만을 가지셔서 늘 저 멀리 계시고 우리의 실패와 완악함과는 상관없는 분이라고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씨름을 하듯 온 존재의 성의를 담아 하는 기도가 성경이 말하는 기도입니다. 정성을 다해야만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협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타협이 아닙니다. 우리의 요구와 이해와 수준으로 하나님이 눈높이를 낮추셔서 열 명까지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아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부족함, 완악함, 오해, 실패, 억울함,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신앙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실존과 상관없는, 현실이 아닌 이야기에 붙들려 신앙을 낭비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재미있어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문을 외우거나 멋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날이 있고 돌아 버릴 날이 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십시오. 재미있게 사십시오. 다시는 못 사는 삶을 사는 것이며 못 가볼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넉넉하고 깊으신 간섭과 개입과 역동성 속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움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밖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아니다’ 하는 그런 범위는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일,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우리의 무지한 선택,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실수, 이런 것들이 다 끝이 아닙니다. 절벽이 아닙니다. 욥기가 무서운 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희망에 찬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보십시오. 다만 조금 힘이 들 뿐입니다.





기도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인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인생이요, 살라고 주신 현실입니다. 그것은 신비와 경이로 가득 찬 길입니다. 인생을 겁내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줄 알고 하나님의 기적과 인도하심을 믿고 울 수 있게 하옵소서. 비명을 지를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알알이 우리 안에 보석이 되고 우리를 깊어지게 하며 놀랍게 하는지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