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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하나님과 팬데믹-톰 라이트

3장 예수님과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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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중요한 단어 중에 이제Now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과거고, 이제는 지금이다. 바울은 인간의 곤경을 분석하고 나서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해결책을 설명하기 시작한다(로마서 3:21).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은 “때가 찼다”라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성경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의식하고 살던 청중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 이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혹은 적어도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표적’은 하나같이 새로운 창조였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하고 계신 새로운 일을 선포하는, 앞을 내다보는 표적이다.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이다.

예수님은 가상의 원인을 돌아보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은 하나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내다보신다.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이 무슨 일을 하실지 내다보는 것과 같다. 그분은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다. 이제는 지금이다. 과거의 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때가 아니다.

예수님이 궁극적인 ‘표적’이시다

사람들이 종말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핼 린지든 라헤이와 젠킨스든 현재의 어떤 새로운 유행이든 ‘종말’에 대해 불안을 조장하는 가르침을 지양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 ‘주기도’를 통해, 전 지구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몰려올 때뿐 아니라 날마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라고 기도한다. 또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뿐 아니라 날마다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한다.
하나님나라 백성과 회개하는 백성은 같이 가기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다.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기도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 이 두 기도가,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하나님나라 세력, 우리가 오래전에 회개했어야 마땅한 진짜 ‘죄’(인간의 정치 체제에서 우리가 다른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 농업과 먹이사슬 체제에서 자연계, 특히 동물계에 저지르는 죄)를 경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장 위대한 최후의 예언자, 예수!
신약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림의 중심에 두고 거기서부터 밖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야말로, 사람들이 우상숭배와 불의와 모든 악의에서 돌이켜야 하는 이유다.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공포를 쌓아 처리한 곳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그분의 주권적인 구원 통치의 출발점이다. 이 일이 예수님의 몸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다. 이 사건들이야말로 회개하라는 유일한 요청이요,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유일한 실마리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을 거부하면, 예수님이 그 나라와 특별히 성전에 임한다고 경고하신 멸망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세상을 향한 구원 계획을 드러내시려고 그 아들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거기에 비길 만한 더 이상의 표적이나 경고는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회개하라는 요청과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선언은 전쟁이나 지진, 기근이나 전염병(또는 집 안에서 당한 사고)을 통해 오지 않는다. 예수님을 통해 온다. 예수님이 말씀하고 가르치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온다. 예수님의 백성을 통해, 성령으로 예수님이 그 삶에 살아 계시는 사람들을 통해,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그분의 특이한 역사를 통해 온다.
예수님이 선언하신 하나님나라가 최고의 기준이다.
더는 ‘최후의 메신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곧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그분과 그분의 사역을 통해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하셨다.

예수님이 이미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님이 지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 통치는 부활에서 시작하여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는 사역을 마치실 때 끝난다. 맨 마지막 원수는 죽음인데, 이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매우 적절한 고려 대상이다(고린도전서 15:25-26).

예수님이 친히 몇 차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영혼 구원’이라는 전통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임재’라는 의미에서 ‘구속적’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의 비밀은 자기를 희생하신 성육신하신 성자의 사랑이다.
당신이 하나님이 세상을 ‘책임지신다’, ‘주관하신다’, 그분이 ‘주권적이시다’라는 말의 뜻을 알기 원하면,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 죽음을 중심으로 ‘나라’와 ‘주관’과 ‘주권’의 개념을 재고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이름을 불러 다시 살리시기 전에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명령하시고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다니로 출발하시기 전에, 나사로가 죽었지만 되살릴 수 있게 부패하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는 뜻이 틀림없다. 돌을 옮겨 놓자, 냄새가 날지 모른다는 마르다의 두려움은 사실과 다르다(요한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의 추측에 맡긴다). 이제 방해물은 사라졌다. 그분은 이 모든 과정 내내 주권적이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족이 이 끔찍한 순간을 어떻게 지날지, 그다음에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실지 다 아신다. 이 모든 것이 요한이 드러내고 있는 어두운 신비, 예수님이 “이 세상의 통치자”(12:31)를 무너뜨리기 위해 곧 죽음에 내려가신다는 신비의 일부다. 하지만 그분은 여기 나오는 나사로와는 달리, 새로운 생명, 곧 죽지 않는 다른 몸으로 나오실 것이다. (나사로가 천으로 감긴 채 무덤에서 나온 점에 주목하라. 요한복음 20장의 예수님은 세마포 옷을 두고 나오셨다.)

나사로를 위해 기도하시고, 상황을 주도하시며, 자신이 할 일을 아신 예수님, 이 예수님이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요한복음 11:35).
그분의 눈물은 진짜였다. 죽음의 공포, 즉 죽음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조롱한다는 사실은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도 너무도 강력했다. 아니, 특별히 그분께는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흘리신 눈물은 “지금 내 마음이 괴롭구나”라고 말씀하신 12장 27절, 마가와 마태가 묘사한 겟세마네의 예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십자가의 외침(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못 보는 사람의 과거를 돌아보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그분은 아무도 비난하시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지금 필요한 일을 알기 위해 앞을 내다보신다. 그리고 그 목표로 가는 길이 바로 눈물이다. 성육신하여 나사렛 예수가 되셨다고 요한이 말해 주는 하나님이, 곧 육신이 되신 말씀,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엄청난 지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지혜 말이다.
그저 눈물을 흘리실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 눈물과 믿음에서 비롯된 권위로, 나사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분이 책임지신다’는 말의 뜻을 어떻게 재정의하시는지 배웠다. 현대 서양인들은 섭리 교리(하나님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반적으로 감독하신다)와 속죄 교리(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를 사하신다)를 갈라놓았다. 신약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너무 굳어져서, 신학자와 유명 기독교 작가들이 방 한쪽에서는 우리가 주요 유행병에 대해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할 기회를 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신약성경은 이런 양극단이 존재하는 방의 존재는 금시초문이다. 우리는 절대 갈라놓아서는 안 되는 이 둘을 다시 통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예수님은 구약성경 예언 전통을 절정으로 이끄시면서, 그 온전한 의미를 자신과 임박한 죽음과 부활에 부여하심으로써 그 전통을 완성하신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이 하셨고 하고 계시고 하실 모든 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표적’이, 예수님, 곧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중에 다시 오리라 약속하신 예수님, 온 세상의 진정한 주 예수님이시라고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