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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브리서 11장 7~16절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꼭 해야 될것 같은데 딱히 설명하기 뭐한 것이 비전이다.
비전(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
비전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
그 비전을 주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러 오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비전을 이루어내셨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비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겨논 씨앗과 같다. 그 열매를 내가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내시고야 만다는 인격적 신뢰로 그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순종해나가는 것이 비전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때는 내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된 때이다.
비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비전을 이루어가는 내 존재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일을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목적인 것이다.
인생을 통해서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장부답게 장성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가봐도 하나님의 자녀다와야 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공동체 다와야한다. 재수가 없으면 안된다. 젠틀해야 한다. 너그러워야 한다.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다와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품 같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비치는 모습이 재수가 없어보이고 독선적이고 지들만의 리그가 되어서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 지금의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를 비웃으면서도 속으론 '재네들은 다르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재네들은 뭔지 모르지만 우리랑 달라~' 이런 소리를 기독교가 들어야 한다.
그런데 '믿는 놈들이 더해' 이게 현실이다.
예수까지 믿어 세상적으로 더 잘될려고 하는 경쟁자의 모습이 예수 믿는자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 가진 자다. 정답을 알고 있는 공동체다. 진리를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좋은 소식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다 주고 또 줘도 부족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것이 내가 되고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쟁이들은 달라~'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한다.
예수 믿는다고 세상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전히 비웃고 조롱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게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자의 영광이요, 특권이다.
멋진 길이다. 비전의 사람이다.
신자가, 교회가 이래야 한다.
빛된 모습이다.
주여, 비전의 사람이 되게하소서!
주여, 비전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꼭 해야 될것 같은데 딱히 설명하기 뭐한 것이 비전이다.
비전(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
비전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
그 비전을 주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러 오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비전을 이루어내셨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비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겨논 씨앗과 같다. 그 열매를 내가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내시고야 만다는 인격적 신뢰로 그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순종해나가는 것이 비전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때는 내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된 때이다.
비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비전을 이루어가는 내 존재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일을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목적인 것이다.
인생을 통해서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장부답게 장성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가봐도 하나님의 자녀다와야 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공동체 다와야한다. 재수가 없으면 안된다. 젠틀해야 한다. 너그러워야 한다.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다와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품 같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비치는 모습이 재수가 없어보이고 독선적이고 지들만의 리그가 되어서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 지금의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를 비웃으면서도 속으론 '재네들은 다르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재네들은 뭔지 모르지만 우리랑 달라~' 이런 소리를 기독교가 들어야 한다.
그런데 '믿는 놈들이 더해' 이게 현실이다.
예수까지 믿어 세상적으로 더 잘될려고 하는 경쟁자의 모습이 예수 믿는자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 가진 자다. 정답을 알고 있는 공동체다. 진리를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좋은 소식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다 주고 또 줘도 부족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것이 내가 되고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쟁이들은 달라~'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한다.
예수 믿는다고 세상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전히 비웃고 조롱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게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자의 영광이요, 특권이다.
멋진 길이다. 비전의 사람이다.
신자가, 교회가 이래야 한다.
빛된 모습이다.
주여, 비전의 사람이 되게하소서!
주여, 비전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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