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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기도-박영선목사

02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 박영선목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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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  박영선목사의 <기도>


# 본문: 눅 18:1-8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이르시되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문제에 관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것이 마땅한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혼동하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주신 비유입니다.
'얼마큼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비유인 것입니다.


정당한 간구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항상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 응답이 우리의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신앙 현실에서는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재펀장과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
괄시당하는 과부와 독생자도 아낌없이 줄 만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비교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원한을 풀어 달라는 두 요구가 모두 정당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에게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 것도 정당한 요구라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결국 과부의 원한을 해결해 준 것을 보면, 과부의 탄원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 우리의 탄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시니 그분이 들어주시는 탄원은 더더욱 정당한 요구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풀어 주시길 바라는 우리의 탄원은 정당한 간구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 정당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불의한 재판관은 번거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과부의 요구가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가 아무리 자주 찾아왔다 한들 번거로울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은 정당히 요구할 수 있는 원한을 말합니다. 정당한 원통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의 입장에서도 정당한 요구로 청원해 오면 그냥 무시해  버릴 수만은 없을 것인데,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느냐'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는 기도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항상 기도해도 낙심하게 되는 상황이 잇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설령 기도의 응답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에게 능력이 없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니 절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데도 안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의지가 없어지거나 약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외면받는 일은 없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계 6:9-10)


아직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다고 요한계시록은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응답이, 하나님의 공의가 온 천하 만민 앞에 햇빛같이 드러나는 마지막 심판 때까지 보류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당 받아야 할 복과 칭찬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도의 응답이 가장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요한게시록 6장에 나온 말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온 천하 만민을 심판하시는 날, 죄지은 자들을 불못에 던지시며 하나님의 자녀를 하늘나라에 데려가셔서 의와 거룩과 영광과 존귀로 영접하실 그날까지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마라, 넘어지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하는 것이 신자가 기도에 대해서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믿음을 보겠느냐

지금 나는 하나님의 참된 약속만 바라보며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게 떨어질 콩고물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응답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마땅한 자세입니다. 기도의 이런 깊은 경지를 누리지 못하고 간구 사항만 늘어놓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깊은 뜻과 지혜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저는 항복합니다. 그것으로 저는 좋습니다. 하나님은 대장이요, 저는 졸병입니다. 오늘도 아프지만 하나님이 대장이어서 저는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오늘 어느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이 보류될지 잘 몰라도 하나님은 제 모든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며 마침내 넘치도록 응답하실 아버지이시기에 오늘도 기도하러 옵니다."

이런 자세로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대접해 보십시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정말 신자답게, 기도를 기도답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믿음 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 욕심대로 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주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방해될 수 없는 신앙의 자리까지 우리가 약속받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